번역가 김석희는 역자 후기 60편을 모아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60’(1997년)을 냈다. 1979년에 낸 첫 번역서인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 역자 후기에서 그가 말한다. “감히 용기를 내어 번역에 손을 대면서도 모자라는 프랑스어 실력과 어설픈 솜씨로 졸렬한 모습으로 만들지나 않을까 두렵다.” 번역가들의 이렇게 삼가는 초심(初心) 때문인지, 책 앞부분에 역자 서문을 싣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본문 뒤 후기다.
불문학자 김화영은 1974년부터 2014년까지 번역한 프랑스 문학·문화에 관한 책의 역자 후기를 모아 ‘김화영의 번역수첩’(2015년)을 냈다. 분량이 많고 적고 간에 역자 후기 쓰는 걸 버거워하는 번역가가 많다. 김화영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우리 역사 최초의 번역시집 ‘두시언해’(1481년)의 두 번째 판각본(1632년) 서문, 그러니까 역자 서문이 아니라 번역서 서문은 계곡 장유(1587∼1638)가 썼다. “배우는 이가 주해를 참고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면 번역을 보아야 할 터”라며 한글을 낮춰 보는 것 같으면서도 한글 번역이 가장 쉬운 이해의 길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좋은 역자 후기란 어떤 것일까? 번역가 노승영의 대답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독자의 자유로운 읽기와 해석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되, 책을 더 풍부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자 후기라면 사족 이상의 읽을거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북클럽 오리진’)
책(원서)과 독자 사이를 매개하는 번역가의 노고에는 마침표가 없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