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29세, 편집국장 27세 ‘언론 벤처’ 美-日 유학한 20대 젊은이들 주축… 자유연애 등 진취적 보도 이끌어
1920년 창간 당시 20대 청년 기자들이 주축이던 동아일보 편집국의 모습. 동아일보DB
나이로만 보면 언뜻 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의 구성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 20대 청년들은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의 창간을 이끈 주역들이다. 창립자이자 발기인 대표였던 인촌 김성수는 29세였고, 편집국장은 27세 하몽 이상협, 주간은 26세의 설산 장덕수가 맡았다.
간부뿐 아니다. 정치부장 진학문(26)을 비롯해 논설기자인 장덕준(28)과 김명식(29)도 20대 후반이었다. 이 밖에 남상일(24), 염상섭(23), 한기악(22), 유광렬(21), 이서구(21), 김형원(20) 등 대표부터 말단 기자까지 혈기왕성한 20대가 주를 이뤄 동아일보는 ‘청년신문’으로 통했다. 유광렬 기자는 “창간 당시에 나는 연소(年少)하였으나 동아일보가 2000만 민중의 절대적 성원으로 탄생되었으니만치 당시의 기세야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창간 당시를 회고한 바 있다.
청년들이 만드는 신문답게 동아일보는 기백이 넘쳤다. “조선인 교육을 일본어로 강제함을 폐하라” “원고 검열을 폐지하라” 같은 용기 있는 사설로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에 끊임없이 저항했다. 또 창간 특집을 시문서화로 장식하는 등 혁신적인 디자인이 등장했고, 자유연애와 민중계몽, 여성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는 진취적인 기사가 많이 실렸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