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버킷리스트
겨울채비 늦은 팽나무엔 여직 단풍이 매달렸다. 그런데 저 불이문과 팽나무의 어울림이 사이좋은 오누이 모습이다. 그렇다. 저 나무 아니었다면 전쟁중에 저 문도 불타서 없어졌을 터. 그러니 저런 모습이 아니고서야 그 기적이 일어났겠는가. 돌기둥에 그것도 기둥 네개의 이 특별한 일주문은 그런저런 사연으로 금강산 건봉사를 여직 상징한다.
동해안은 여름 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다. 그중에도 속초 설악산 강릉 정동진 등의 유명한 관광지나 바닷가는 대부분 여러번씩 다녀왔을터. 올 겨울 동해안에서 바다 뿐만 아니라 좀 더 정취넘치는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 동해 최북단 고성군에서 민통선을 살짝 비켜 난 ‘금강산 건봉사’(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36)다.
굳이 여길 추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겨울산사에서 템플스테이로 하룻밤을 보내며 아침과 저녁 예불 중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갖고 근처 바닷가에서 해맞이도 하라는 뜻에서다. 건봉사에서는 하룻밤 2만 원만 ‘시주’하면 자유롭게 템플스테이(숙식포함)를 할 수 있다.
건봉사는 ‘산중 대찰’이다. “산골짝 고성에 웬 ‘대찰’(규모가 큰 사찰)?”
사연은 이렇다. 우선 이것부터 알아두자. 제3교구본사는 70년 전까지만 해도 신흥사가 아니었다. 이 건봉사였다. 당시엔 거꾸로 신흥사가 말사였다. 당시만 해도 건봉사 당우는 766채에 이르렀다. 그 모습, 경내에 걸린 사진이 말해준다. 너른 골 안을 차지한 사찰은 한 고을을 연상케 할 정도로 거창하다. 그런데 그 많던 당우는 다 어디 간 걸까. 안타깝다. 한국전쟁 중에 모두 포격으로 불탔단다.
보통 절집이라면 일주문에 붙어야 할 사찰 명판이 이곳엔 이렇듯 경내 당우에 걸렸다. 일주문에 ‘불이문’이란 현판이 붙어서리라.
특이한 건 그뿐이 아니다. 일주문(一柱門)은 글자 그대로 기둥을 좌우에 한 개씩 세워 일자로 배치한 문. 그런데 이건 네 개다. 기둥도 대개는 통나무지만 건봉사 것은 화강암 돌기둥(높이 1.6m)위에 짧은 통나무를 받친 형국이다. 돌기둥엔 무늬까지 새겨졌다. ‘금강저’(金剛杵·승려가 불도를 닦을 때 쓰는 법구로 번뇌를 깨뜨리는 보리심을 상징)다. 그걸 새긴 데도 뜻이 있다. 일주문 통과 후에 거치게 되는 금강문이 이 사찰엔 없어서다. 여기선 이 금강저가 그걸 대신한다. 금강저는 사천왕문에서 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과 금강역사 손에 들린 칼이다. 그 칼의 의미. 불법의 세계로 들어오기 전 실타래처럼 엉클어진 속세의 번뇌를 단 칼에 끊어내라는 명령이다.
일주문을 통과하기 전 오른 편을 보자. 15m 큰 키의 팽나무 노거수가 서있다. 그 앞 팻말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불이문이 전쟁 중에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건 모두 나무가 여기서 지켜준 덕분이라고. 고마운 나무가 아닐 수 없다.
저 능파교는 경내 한가운데로 흐르는 개울을 가로지른다. 거길 지나는 스님이 발걸음이 가볍다.
여행정보 찾아가기
▶ 손수운전 : 진부령과 거진읍 사이 중간쯤. 국도7호선을 타고
따르는 방법도 있다.
▶ KTX 경강선: 서울¤강릉 고속철도(2시간소요)로 12월22일 개통예정. 강릉에선 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로 간성(2시간소요)까지 간 뒤 택시(10km·1만2000원) 이용.
건봉사: 강원 고성군 건봉사로 723(거진읍 냉천리 36). 033-682-8100.
▶ 템플스테이: 2만원. 예약 및 오후 4시 전 도착 필수.
꾸덕꾸덕 생선찜과 젖갈의 풍미
기자가 속초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식당이 있다. ‘옥이네 밥상’이다.
요즘 같으면 도루묵이 제철인데 이 식당에 가면 제철 생선은 물론이고 철지난 것들도 어렵잖게 맛본다. 꾸덕꾸덕 말려두었다가 갖은 양념을 둘러 무와 함께 찜을 해낸다. 거기선 온갖 젓갈도 맛본다. 그중 최고의 맛은 가자미식해. 그 맛, 어디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함경도 월남민 ‘아바이’가 모여 살아 ‘아바이 마을’이라고 불린 동네 거기서 태어나 자라 그 아바이의 입맛을 제대로 배운 월남민 가족의
김옥이 씨가 제 철에 직접 장만해서다. 젓갈은 모두 열세가지고 명태순대와 오징어순대도 있다. 생선찜엔 다섯 가지 생선이 오른다. 알배기 도루묵에 가지미와 코다리(명태), 가오리 등등. 살짝 말린 생선을 쓰는 것은 함경도 스타일이다. 씹을 때의 쫄깃한 식감, 구수한 생선살과 거기 배어든 양념 맛이 기막히다. 아바이는 함경도 남자를 지칭하는데 속초의 이 아바이마을은 공산치하에 넌더리나 한국전쟁 중 월남한 아바이들이 모여 형성됐다. 위치는 청초호와 바다 사이였는데 초기엔 허리춤 깊이로 땅을 파고 입구만 막은 토굴집이 대부분이었단다.
지금은 강원국제관광 엑스포기념관이 들어선 청호동의 번듯한 주택가. 1100여 가구 3600여 주민 가운데 70%가 실향민이다.
옥이네밥상은 설·추석 등 명절(3일)만 빼고 매일 영업(오전7시¤ 오후9시) 한다. 젓갈 식해는 택배로도 맛볼 수 있다.
글·사진 간성=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