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후]‘240번 버스 마녀사냥’ 3개월

240번 버스 운전사 김모 씨가 11일 병원으로 가기 위해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고 있다. 3개월 전 잘못된 인터넷 게시물로 인해 마녀사냥을 당했던 김 씨는 지금도 만성두통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우리 딸…, 이젠 다 털어버리고 잘 살아야….”
아버지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울컥했다. 하객들은 그저 큰딸 시집보내는 친정 아빠의 눈물로 여겼다. 하지만 아빠의 눈물 속 남다른 아픔을 아는 신부와 다른 가족의 눈가는 촉촉이 젖었다.
사건이 불거졌을 때 김 씨의 큰딸은 이미 결혼 날짜를 잡은 상태였다. 당시 김 씨는 자신을 향하던 화살이 결혼을 앞둔 딸한테 옮겨갈까 더욱 두려워했다. 가족의 신상정보까지 유포돼 자칫 딸의 결혼까지 망칠 수 있다는 생각 탓이었다. 큰딸은 “헛소문을 퍼뜨린 누리꾼을 당장 고소하자”고 흥분했지만 김 씨는 “일이 더 커지면 가족까지 위험에 빠진다”며 다독였다.
예식장 단상에 올라 딸과 듬직한 사위를 보자 그동안 마음 졸였던 순간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김 씨는 마음속에 준비한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잘 살아 달라”는 당부만 하고 황급히 자리로 돌아왔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큰딸이 눈물을 훔쳤다.
마녀사냥을 겪은 지 3개월이 지났지만 김 씨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남은 상처는 깊어 보였다. 김 씨의 아내 A 씨는 ‘다시는 운전대를 못 잡게 해야 한다’ ‘살인미수’ ‘콩밥을 먹여야 한다’ 등 얼굴도 모르는 누리꾼들의 악플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누명을 벗은 뒤에도 A 씨는 삭제된 악성 댓글을 다시 찾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작성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란 문구를 봐야 마음이 놓인다.
“불쑥불쑥 그때 생각이 떠올라 겁이 날 때가 있어요. 우리에게는 ‘칼날’이었던 댓글이 진짜 없어진 걸 눈으로 직접 봐야 ‘이제 우리 가족과 상관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내와 두 딸 앞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김 씨는 태연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빨갛게 부어 있기 일쑤였다. A 씨는 “속으로만 삼키려는 남편의 모습에 저도 몰래 많이 울었다. 버스 운전사 생활 33년 동안 월급 안 갖고 온 게 정년퇴직 직후인 8월 딱 한 달이었다. 그러고 ‘가장 노릇 못 해 미안하다’고 내내 자책했던 게 바로 우리 남편”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9월부터 계약직으로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A 씨 역시 딸들이 피해를 받을까봐 주변에 억울함도 털어놓지 못했다.
“나쁜 버스 운전사란 소문이 너무 퍼져서 아무리 해명해도 오해를 받을까봐 두려웠어요. 딸들까지 주변에서 손가락질 받을까봐….”
결국 참다 못한 두 딸이 적극적으로 사실을 밝혔다. 사건 이틀 뒤 인터넷에 글을 올려 “저희 아버지는 승객 말을 무시하거나 욕을 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A 씨는 “가족 모두 평범했던 9월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