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판’ 가상화폐 시장]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하지만 기쁨은 채 이틀을 가지 못했다. 뉴이코의 가격은 10일 300원대까지 떨어졌다. 그러자 게시판은 “고래(가상화폐 시장의 큰손이라는 뜻)에 당했다”는 불평불만으로 도배됐다. 거래량이 평소에 비해 10배 이상 뛰며 가격 급등락이 일어났는데 ‘큰손’의 개입 없이 가능했겠느냐는 의혹이다.
이 코인에 투자한 한 투자자는 “뉴이코뿐 아니라 가격이 저렴한 작은 코인들은 돌아가면서 가격이 크게 오르내린다”며 “개미들만으론 이런 움직임을 만들기 어렵고 호재 없이 급등하는 경우도 많아 작전세력이 코인을 쥐락펴락한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투자 시장은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 돈을 잃는 만큼 누군가는 돈을 번다. 최근 군소 코인의 가격이 급등락하자 투자자들 사이에선 ‘고래’들이 코인의 시세를 조종해 개미들의 피눈물로 이득을 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큰손’들이 호재를 띄워 가격을 급등시킨 뒤 물량을 개미 투자자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주식 테마주’와 비슷한 양상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AQR캐피털 전 이사인 에런 브라운도 8일 블룸버그통신 칼럼에서 “현존하는 비트코인의 40%는 1000명의 ‘고래(whale)’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시장이 수요 공급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초기 투자자와 채굴자 등 ‘비트코인 재벌’들의 놀이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비트코인에 큰손이 존재한다면 비트코인 가격의 1만분의 1도 안 되는 군소 코인 시장에도 큰손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는 ‘고래’들이 가격을 조금씩 내렸다 올리는 방식으로 일반인 투자자를 모은 뒤 목표 수익을 달성하면 매도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조정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많이 제기된다.
○ 개미 등치는 배신자 개미도
이달 초 카카오톡 투자방에 가상화폐 ‘에이다’와 관련한 호재가 올라왔다. “에이다가 한중일 통합 코인으로 상용화가 결정됐다”는 소식이었다. 약 150명의 참여자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투자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런 혼란은 투자자 중 한 명이 “그거 사기로 판명났다”고 반박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아니면 말고”식 가짜 정보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만들어진다. 가상화폐 커뮤니티엔 말머리에 ‘속보’ ‘특보’ ‘긴급’을 단 가짜 게시물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진다. 가상화폐 시장에 밝지 않은 투자자라면 그래픽까지 그럴싸하게 합성해 올라오는 가짜 뉴스에 당하기 쉽다. 기업 이익을 기준으로 가격이 정해지는 일반 주식과 달리, 가상화폐는 적정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근거가 별도로 없기 때문에 이런 루머의 영향력은 더 크다. 최근에는 “비트코인을 갖고 있으면 다른 가상화폐 ‘비트코인 플래티넘’을 공짜로 주겠다”는 가짜 뉴스에 비트코인 시세가 급등락했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부분의 가상화폐는 발행 수량이 한정돼 있어서 많은 물량을 가진 큰손이 개입하면 충분히 시세를 조종할 수 있다”며 “정보의 투명성이 없다 보니 트위터, 정보지 등에 투자자들이 의존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심판 역할 해야 할 거래소만 배불려
가상화폐가 투기판으로 전락한 배경엔 거래소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거래대금의 0.04∼0.15%에 해당하는 코인을 수수료로 받는다. 국내 최대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은 올해에만 16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쉽고 빨리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청소년까지 코인 투자에 뛰어들었다. 사회적으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주요 거래소들은 지난달 말부터 미성년자 가입을 금지시켰지만 기존에 가입한 고교생 등에 대해서는 따로 제재하지 않고 있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앞으로 미성년자의 투자를 원천적으로 금지한다고 공표하는 건 투자자들 사이에 혼란을 줄 수 있어 적절한 대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거래소는 중립적으로 ‘심판’ 역할을 하면서 거래를 이뤄지게 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며 “수익을 내기 위해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는 것은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는 것이므로 해당 부분에 대한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모 mo@donga.com·송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