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경성부 혼마치(本町) 풍경.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이튿날(1923년 11월 9일) 동아일보는 “(화재) 원인에 대해선 아직 충분한 조사가 없으나 그곳 2번지 지물상(指物商·널빤지로 만든 가구를 파는 가게 또는 그 주인) 다나카 마츠시(高田松藏) 씨 집 2층 난로에서 실화(失火·실수로 불을 냄) 된 것인 듯하다 하며 손해액도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최소 50만 원은 될 것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당시 50만 원을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약 33억 원 정도 된다.
1923년 11월 9일자.
그 이유가 밝혀진 건 그해 오늘(12월 14일)이었다. 이날 동아일보는 ‘혼마치 대화(大火)의 방화범’이라는 기사에서 “피고는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이 주소에 집 한 채를 얻어 ‘소목장이(나무로 가구나 문방구 따위를 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를 하던 바 요사이 금융의 공황으로 수백 원의 빚을 지고 매우 고생하는 통에 설상의 가상으로 지난달 7일 오후 11시경에는 직공으로 있는 이봉수 외 1명에게 품값을 내라는 독촉을 받고 더욱 마음이 상해 자기 친구 시라요시 시라토시(白水庄吉)와 함께 부근 일락정(一樂亭)에서 술을 먹고 다음 날(8일) 새벽 2시에 두 사람이 자기 집으로 돌아와 사정 이야기를 하다 친구가 돌아간 후 그는 자기 집에 불을 놓아 닛폰(日本)화재보험회사 상품 보험금 2000원과 가구 보험금 100원을 찾아 자기의 곤궁을 펴보려는 작정으로 자기 집에 불을 놓아 전소시키고 다시 그 불이 연소되어 그 부근에 있던 쇼타 오바타(小畑辰太郞) 씨 집 외 23집을 전소시키고 야마모토 구주루(山本九藏) 씨 집 외 4집을 반소(半燒)시켜 65만2000여 원을 손해를 낸 사실이더라”고 전했다.
1923년 12월 14일자.
결국 다나카 씨는 3000원(현재 약 2000만 원) 정도 ‘보험사기’를 치려다 200배가 넘는 65만2000원(현재 약 42억 원)짜리 사고를 치고 만 것. 손해보험협회 등은 이 사건을 한국 역사상 첫 번째 보험사기 사건으로 보고 있다.
재미있는 건 방화범으로 몰렸던 다나카 씨가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점. 이듬해 3월 3일과 10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당시 검사는 49세였던 다카나 씨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지만, 판사는 결국 무죄를 선고했다.
1924년 3월 10일자.
그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당시 동아일보 보도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자세한 사정을 아시는 분은 e메일(kini@donga.com) 등으로 제보 부탁드린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