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개봉 영화 ‘1987’ 속 동아일보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및 축소조작은폐 의혹을 보도한 1987년 1월 16일자 동아일보 특종기사. ‘폐에서 출혈반이 발견됐다’ ‘피멍이 많이 발견됐다’는 부검 결과를 전하며 진상은 ‘고문치사’임을 알렸다. 당시 동아일보의 연쇄 특종보도는 그해 역사적인 6월 민주항쟁의 불씨가 됐다. 동아일보DB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라’는 정권의 보도지침에 저항한 기자들, ‘시키는 대로 사망 원인에 ‘심장마비’ 네 글자만 적으라’는 회유에 굴하지 않았던 의사, 사체를 부검도 하지 않고 화장하려는 경찰을 제지한 검사….
27일 개봉하는 영화 ‘1987’은 영화라기보단 담백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자극적인 고문 장면이나 관객 몰이를 위한 상업적 미끼를 대부분 쳐낸 대신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팩트를 촘촘하게 엮어 나간다.
당시 주요 신문들이 정권의 보도지침 탓에 ‘쇼크사’ 수준의 보도만 하며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동아일보가 고문치사로 뒤집는 특종을 한 것이다. 영화에 수십 명의 기자가 등장하지만 그중 배우 이희준이 연기한 동아일보 고 윤상삼 기자가 가장 비중 있는 기자 역할로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 ‘1987’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는 당국에 맞서 집요하게 진실을 파헤쳤던 동아일보 윤 기자 역할을 맡은 이희준(가운데). 영화 속에서 윤 기자의 보고를 받은 사회부장은 “대학생이 고문받다 죽었는데 이런 보도지침이 무슨 소용이냐!”며 정권에 정면으로 맞선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당시 황열헌 동아일보 기자는 타사 기자들이 ‘기사도 안 나갈 텐데, 뭐 하러 가느냐’고 하는 와중에도 박 씨의 시신을 화장하는 벽제 화장터를 취재해 ‘창(窓)―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비는 할 말이 없다이’(1월 17일자)라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고, 6월항쟁을 상징하는 플래카드에도 쓰였다. 연쇄 특종은 5월 22일자에 치안감을 비롯한 상급자들이 고문치사범 축소 조작을 모의했다는 폭로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남시욱 동아일보 편집국장에게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화를 해 “귀지(貴紙)가 이겼어. 진상을 밝히기로 결정했어”라고 했다 한다.
이처럼 1987년 1년간의 장기 탐사 보도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동아일보 기자들의 노력은 영화 속에서는 ‘윤 기자’라는 캐릭터로 형상화됐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