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핵동결’ 조건도 뺀 파격적 대화 손짓… 北-美 사전교감 가능성

입력 | 2017-12-14 03:00:00

틸러슨 ‘조건없는 만남’ 北에 제안




‘화성-15형’ 개발 유공자 포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2일 제8차 군수공업대회에 참석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등 전략무기 개발 유공자들을 포상하며 격려하고 있다. 북한이 과거부터 열어온 군수공업대회를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대북 대화 가능성 언급은 형식과 내용면에서 이례적이다. 12일(현지 시간) 공개된 외부 행사에서 북한이 들으라는 듯 발언했다. “북한과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첫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파격적인 제안이다. 당시 ‘탐색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싱크탱크에서 나왔지만 당국자의 제안은 아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 외교안보 라인에서 이처럼 강한 북한과의 대화 시그널이 나온 건 처음이라는 점에서 북-미 간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틸러슨 장관은 “그냥 만나자. 원하면 날씨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며 “우리는 협상 테이블이 네모인지 원형인지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도 있다”고 상세하게 밝혔다. 사실상 무조건적인 대화 의지를 밝힌 셈이다. “핵동결로 대화의 문을 연 뒤 핵폐기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해법에 비해서도 훨씬 완화된 제안이다. 앞서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12일 평양을 떠나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뒤 공항에서 ‘미국과 직접 대화할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조건이 갖춰지면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화성-15형’ 개발 유공자 포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2일 제8차 군수공업대회에 참석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등 전략무기 개발 유공자들을 포상하며 격려하고 있다. 북한이 과거부터 열어온 군수공업대회를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상황에서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에 돌입한 두 나라가 일단 상황 관리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 국무장관이 상대방 메시지를 듣지도 않고 공개적으로 유화 제스처를 먼저 취하진 않을 것”이라며 북한 측이 대화 조건에 관한 모종의 제안을 했을 수 있다고 짐작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북-미의 비공식적 대화 채널이 최근 더 활발하게 가동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하지만 틸러슨 장관이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에 있어 ‘다른 선택’을 기꺼이 하겠다는 관점을 가지고 대화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강조해 이날 제의가 ‘최대한의 압박과 개입’이라는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의 틀 안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첫 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외교적 노력들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해 대화에 성과가 없을 경우 군사적 옵션도 준비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외교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자신의 차례가 되면 (북한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불화를 빚으며 경질설이 끊이지 않는 틸러슨 장관이 대통령과의 교감 없이 개인적인 소신을 피력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청와대도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과도한 의미 부여보다는 앞으로의 진행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의 방북과 함께 조금은 더 좋은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도 “북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는 바뀌지 않았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시간 끌기용 ‘대화를 위한 대화’가 반복될 가능성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 안보소장은 “미국 정부는 2001년에도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이 북한과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했었다”며 “실제 대화를 통해 험난한 난제들을 풀지 못하고 성과도 얻지 못하면 이런 외교행위는 단지 협상의 한 조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이세형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