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영화감독 김기덕(57·사진)을 폭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여배우 A 씨가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촬영 현장이 공포스러웠다”면서 “그것은 연기 지도가 아닌 구타였다”고 울분을 토했다.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14일 서울 합정동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영화감독 김기덕에 대한 검찰의 약식기소 및 불기소 처분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여배우 A 씨를 비롯해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정슬아, 홍태화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사무국장, 이명숙 변호사, 서혜진 변호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남순아,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윤정주 씨 등이 참석했다.
앞서 A 씨는 2013년 3월 영화 ‘뫼비우스’ 촬영장에서 김 감독에게 뺨을 맞고 대본에 없던 베드신 연기를 강요받자 출연을 포기했다며 올 8월 검찰에 고소장을 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박지영)는 7일 A 씨 뺨을 두 차례 때린 혐의(폭행)로 김 감독을 벌금 5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 ‘연기 지도’를 위해 뺨을 때렸다는 김 감독의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 다만 검찰은 김 감독이 A 씨에게 사전 협의 없이 남자 배우의 성기를 만지도록 강요한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또 A 씨에게 다른 영화 제작 스태프 앞에서 모욕적인 발언을 한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공소권 없음 처분했다.
이에 공대위는 검찰의 약식기소 처분을 규탄하는 2차 기자회견을 열었고, A 씨는 블라인드 뒤에서 직접 울분 섞인 심경을 토로했다.
A 씨는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오랜 고민 끝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 4년 만에 나타나 고소한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은 고소 한 번 하는데 4년이나 걸린 사건”이라며 “사건 직후 2개월 동안 집 밖에 못 나갈 정도로 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누가 내 앞에서 손만 올려도 폭행 충격이 떠올라 참을 수 없는 불쾌감에 시달린다”고 호소했다.
그는 사건 후 각종 센터와 변호사 상담, 심리 상담 치료를 시작하고 영화계 지인까지 찾아갔지만 다들 ‘승산 있겠냐. 잊으라’는 조언만 했다고 털어놨다.
A 씨는 “사건 발생 직후 김기덕 감독의 대리인 역할을 해 온 김기덕 필름 관계자에게 사전협의 없이 강제로 남자 배우의 성기를 잡게 한 것과 폭행 등에 대해 문제제기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김기덕 필름 관계자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가 돌연 돈을 줄 테니 촬영한 분량만 쓰거나 촬영을 접어야 한다고 ‘선택’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촬영 중단을 결정한 건 김기덕 감독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A 씨가 취재진과 나눈 질의응답▼
-김기덕 감독을 고소하고, 이걸 공론화시킨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가?
“현재까지는 후회하지 않는다. 사건이 최종적으로 끝나야지 이 사건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죽을 때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지 아닐지도 알 수가 없다. 언론이 도와주셔서 이 사건이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기억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린다. 나설 가치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에서는 미투캠페인(# MeToo) 등으로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고 심각성을 알리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미투캠페인은 세계적인 배우들이 굉장히 많이 앞장섰다. 나처럼 힘없는 배우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더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고, 그런 시스템이 잘 갖춰지길 바란다.”
-고소장 접수 후 받은 압력이나 불이익은 없었는지?
“내가 받은 불이익은 김기덕 필름 측의 발표였다. 공식 발표를 통해서도 그렇고 SNS를 통해 내가 촬영 현장을 무단이탈을 했다는 걸 밝힌 스태프들도 있었다. 배우가 그것도 주연배우가 촬영장을 이탈하면 손해가 막심하다. 누가 그 배우를 쓰겠는가. 나 같은 무명배우는 이쪽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었다. 내가 이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해 아직도 괴롭다. 그런데 밥벌이조차 못하게 만들었다. 김기덕 감독이 무단이탈이라는 용어를 썼을 때 그게 배우에게 어떤 의미인지 과연 몰랐을까.”
“충격적이고 두려웠다. 명예훼손이나 강요 부분에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했는데 이해가 안 됐다. 검찰에서 외면할까봐 많이 두렵다.”
-촬영현장에서 많이 두렵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는지?
“공포스러웠다. 감독은 첫 촬영 날부터 내게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나도 그걸 느꼈다. 연기지도를 했다고 했는데 난 구타를 당했다. ‘감정 잡게 할 거야’라고 한 뒤 갑자기 세 대를 때렸다. 두 대가 너무 아파서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고 한 대는 손가락만 스쳤다. 그 뒤 카메라를 켠 뒤 ‘액션’을 외쳤다.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거나 제재를 하지 않았다. 외로웠고 매니저도 없었다. 도대체 내가 김기덕 감독한테 무슨 잘못을 했기에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얻어맞아야 했나.”
-고소사실이 알려진 뒤 김기덕 측에서 온 연락은 없었는가?
“없었다.”
최정아 동아닷컴 기자 cja0917@donga.com
정정보도문
본보는 2018. 6. 3. <김기덕 감독, 자신을 고소한 여배우 무고죄로 맞고소> 제목의 기사 등에서 ‘영화 뫼비우스에서 중도하차한 여배우가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위 여배우는 김기덕이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를 바로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