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무진장한 공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미궁이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걸어도, 근처에 있는 구역과 거리들을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그 도시는 언제나 그에게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미국 현대문학의 지형도에 작가 이름을 각인시킨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중 ‘유리의 도시’에 나온 구절이다. 이 소설뿐 아니라 숱한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통해 대도시 뉴욕은 한층 더 휘황한 광채를 자랑한다.
▷세계적 소설가가 서울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의 ‘빛나: 서울 하늘 아래’이다. 그는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지내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소설 속에서 어촌 출신 여대생 빛나는 서울에 올라와 불치병에 걸린 살로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비둘기를 키우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실향민, 버려진 아기, 탐욕에 희생되는 아이돌 등 5가지 사연이 등장하는데 발품을 판 흔적이 역력하다. 르 클레지오는 오류동 우이동 등 작품 속 배경을 지하철 버스를 타고 누볐다 한다. 노작가의 내공이 담긴 신작이 높은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지구촌에 서울의 내밀한 매력을 알리는 작품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