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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르 클레지오가 사랑한 ‘서울’

입력 | 2017-12-16 03:00:00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에게 1968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설국’의 첫 대목. 작가는 니가타현 산간지방의 온천마을 유자와에 머물면서 이곳을 무대로 한 소설을 집필했다.

▷‘뉴욕은 무진장한 공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미궁이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걸어도, 근처에 있는 구역과 거리들을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그 도시는 언제나 그에게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미국 현대문학의 지형도에 작가 이름을 각인시킨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중 ‘유리의 도시’에 나온 구절이다. 이 소설뿐 아니라 숱한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통해 대도시 뉴욕은 한층 더 휘황한 광채를 자랑한다.

▷세계적 소설가가 서울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의 ‘빛나: 서울 하늘 아래’이다. 그는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지내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소설 속에서 어촌 출신 여대생 빛나는 서울에 올라와 불치병에 걸린 살로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비둘기를 키우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실향민, 버려진 아기, 탐욕에 희생되는 아이돌 등 5가지 사연이 등장하는데 발품을 판 흔적이 역력하다. 르 클레지오는 오류동 우이동 등 작품 속 배경을 지하철 버스를 타고 누볐다 한다. 노작가의 내공이 담긴 신작이 높은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지구촌에 서울의 내밀한 매력을 알리는 작품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요즘은 국가보다 도시경쟁력을 앞세우는 시대. 이 소설에 따르면 ‘서울은 최선과 최악이 공존하는 곳’이다. 작가는 ‘고층 건물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최악, 아직 남아 있는 골목의 일상과 마당에 푸성귀를 심어 먹는 정겨운 풍경을 최선의 매력으로 지목한다. 르 클레지오가 사랑하는 서울은 과거와 현재와 공존하고, 인간적 정취가 살아 숨쉬는 도시다. 우리들이 꿈꾸는 서울도 이와 다르지 않을 터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