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외세에 굴욕당했던 한국
지금도 북한 문제에 주도적으로 못 끼어
안보는 독립 지키는 마지막 보루… 진영에 갇히지 말고 나라 먼저 생각해야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우리나라는 줄곧 강하지 못했다. 물론 강했던 때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길지는 못했다. 강하지 못한 결과 우리나라의 독립은 자주 손상됐다. 중국은 끊임없이 천자의 지위를 자칭하며 우리를 제후국으로 하대하였다. 주자학 이념에 갇힌 조선의 지식인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려는 왕을 향해서 제후국의 왕이 천자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막아서곤 했다. 중국의 압력도 있었지만 스스로 제후국으로 자처하며 종속의 길을 선택한 점도 있다.
최근 영화 ‘남한산성’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우리나라 왕이 중국 청나라 왕 앞에 무릎 꿇고 나아가 머리를 땅에 찧었던 삼전도의 치욕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 뒤로 300년 후에는 일본에 아예 나라를 뺏겨 버렸다. ‘독립’은 사라졌다. 3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라 없이 살면서 어린 누이들은 위안부로 끌려가고, 젊은 사내들은 남의 전쟁에 총알받이로 나갔다. 중국과 일본은 누가 더하고 누가 덜하다고 할 수 없이 우리의 ‘독립’을 끊임없이 손상시키려 시도하였고, 그들이 전략적으로 맘을 먹을 때마다 국내의 진영 논리에 갇혀 내부 싸움만 하던 우리는 속절없이 당해 왔다. 이런 치욕을 당하고도 우리는 다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경기 가평에는 ‘경기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는 조종암(朝宗巖)이 있다. 소중화(小中華)의 성지다. 중국 명나라를 향한 숭배와 감사를 담은 글씨들이 새겨져 있는데, 조선 선조(宣祖) 대왕의 글씨 ‘만절필동(萬折必東)’도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일을 조종(朝宗)이라 한다. 만절필동은 황허강의 강물이 수없이 꺾여도 결국은 동쪽으로 흐르는 것을 묘사하며 충신의 절개를 뜻한다. 의미가 확대되어 천자를 향한 제후들의 충성을 말한다. 남(南)이나 서(西)로 흐르는 강물을 가진 민족이 동쪽으로 흐르려 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날 방명록에 ‘만절필동’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한시적인 정권은 영속적인 국권에 봉사해야 한다. 진영에 갇히면 정권만 보이고 나라는 안 보일 수도 있다. 각자의 진영에 갇혀 나라의 이익을 소홀히 하는 일이 길어질 때 항상 독립이 손상되었다. 그 후과는 참혹하다. 지금 한가한 때가 아니다. 경제 이익으로 안보 이익이 흔들리면 안 된다. 안보가 ‘독립’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슬프고 둔감한 우리여, 작은 이익이나 진영의 이념을 벗고, 한 층만 더 올라 나라를 보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