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시인
―에마뉘엘 레비나스 ‘신, 죽음 그리고 시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일 년이 가까워온다. 그 후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혈육의 죽음뿐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번 경험해도 죽음 앞에 선 그 시간들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랜 질병은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지만, 갑작스러운 사고인 경우는 그 부재의 실감이 한참 뒤에야 찾아오기도 한다. 죽은 자는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은 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그 흔적을 드러낸다. 고인의 모습, 냄새, 소리, 감촉 들이 불현듯 되살아나곤 할 때, 죽음은 다시 현재적 사건이 된다.
문제는 그 완벽한 정지 상태에 이르기까지 통과해야만 하는 고통들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죽음(death)’ 자체보다 ‘죽어감(dying)’이 더 두렵고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유명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도 질병과 죽음 앞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후두암으로 죽어간 프로이트는 병이 깊어지면서 나는 악취 때문에 누구도 옆에 오길 꺼렸다고 한다. 오직 그의 딸 안나만이 죽어가는 아버지를 끝까지 보살폈다. 이처럼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본다는 것은 죽어가는 자의 고독과 비참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생전에 쓰시던 틀니를 차마 버릴 수 없었다. 빛바랜 틀니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화학물질로 된 치아들 사이로는 침도 음식물도 더 이상 드나들지 않는다. 그 주인이 영영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숨은 숨’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 숨은 것이다 / 잦아들던 숨소리와 함께
숨은 숨이다
나희덕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