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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평창이다]스키왕 꿈꾼 의대생, 올림픽 진료실 지킨다

입력 | 2017-12-18 03:00:00

은승표 의무전문위원




평창 겨울올림픽 의무전문위원인 은승표 코리아정형외과 원장(왼쪽)이 치료를 도왔던 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안근영(가운데), 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신소정과 카메라 앞에 섰다. 은승표 원장 제공

그는 지금도 스키 활강경기장 맨 위에 서 있는 자신을 회상한다.

‘탕’ 소리와 함께 출발한 그는 어느새 결승점을 통과했다.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그 어렵다는 활강경기를 무사히 완주한 그에게는 꿈이 생겼다. ‘겨울올림픽에 꼭 나가리라’는….

은승표 코리아정형외과 원장(54)의 이야기다. 그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의무전문위원으로 활동한다. 올림픽 기간에는 매일 정선 알파인경기장 의무책임자로 대기하게 된다. “2013년부터 의무위원회가 구성되고 평창 겨울올림픽 의무를 담당할 사람을 찾았어요. 저한테 섭외가 왔을 때 그냥 ‘운명’이란 말밖에는 생각이 안 났습니다. 무조건 해야 한다고 다짐했어요.”

그에게 ‘스키’는 젊은 날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1982년 가톨릭대 의대에 입학한 은 원장은 우연히 학교에 스키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당시에는 흔치 않은 운동이었죠. 바로 스키부에 가입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너무 좋아했죠. 그러다 운동선수가 많이 다치니 의대에 가서 이들을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도 ‘너 전공은 정형외과’라고 하더군요. 하하.”

당시 은 원장은 각종 대회에 참가해야 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겨울스포츠, 특히 스키의 경우 워낙 선수층이 얇다 보니 전국체전 등에도 대학 동아리 스키부 학생들이 선수로 출전할 수 있었다.

“저도 서류상으로는 ‘정식 스키 선수’였답니다(웃음). 선수로 등록해 대회에 나가니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훈련도 열심히 하고, 운동을 정말 진지하게 접근했죠. 그러다가 훈련 방법을 넘어 부상, 재활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은 원장이 A4 용지에 써준 ‘Hope for the best, but prepare for the worst’는 최고의 결과를 기대하지만 부상, 사고 등 최악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평창 올림픽 의무지원팀 캐치프레이즈다. 은승표 원장 제공

은 원장은 1993년 정형외과 전문의가 됐지만 스포츠 의학에 대한 목마름이 심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버몬트주립대 스키부상연구소 유학을 선택한 이유다. 그는 “당시 외환위기인데도 유학을 갔다”며 “선수로 뛰어본 경험이 공부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귀국해 2002년 병원을 개원한 후 내부에 체육관 시설을 설치해 치료, 수술에 재활운동을 접목했다. 보디빌더들과 합숙하며 같이 트레이닝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재활을 제대로 하는지를 연구했을 정도. 은 원장은 대한스키협회 의무이사, 대한체육회 의무분과 위원 등을 역임하며 선수 치료와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왔다.

그는 현재 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귀화해 한국 바이애슬론 국가대표가 된 티모페이 랍신 선수(29)와의 인연 때문이다. 5개월 전 랍신 선수는 십자인대가 끊어져 올림픽을 포기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은 원장과 함께 재활을 하면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창 시절 제 방에는 남자 알파인 월드컵 최다승(86승)인 스웨덴 스키 선수 잉에마르 스텐마르크의 대형 사진이 붙어 있었죠. 올림픽에 나가는 꿈을 꿨고요. 꿈이 현실로 이뤄졌습니다. 선수는 아니지만 메디컬 담당으로 올림픽을 멋지게 치러낼 겁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