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이 천연두 치료를 위해 복용했던 사성회천탕의 주재료 웅황.
갑산한의원 원장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는 조선의 진정한 ‘헬리콥터 맘’이었다. 숙종이 왕이 되고서도 본인이 직접 집밥을 챙겨 먹일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14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숙종은 어머니의 강력한 보호를 받았다.
“당초에 자전(명성왕후)은 여러 공자들이 은밀히 화를 일으킬 뜻을 품었음을 알고, 행여 독살 시도가 있을까 두려워하여 임금의 음식을 모두 친히 장만하여 손수 갖다 드렸다.”
천연두는 숙종뿐 아니라 왕가의 가족 대부분을 괴롭힌 질환이었다. 첫 부인인 인경왕후, 그리고 왕세자인 연령군, 연잉군 모두가 천연두를 앓았다. 숙종 재위 9년 10월 13일 한양도성에 천연두가 번지고 18일 숙종 임금이 천연두에 걸린다. 천연두 치료 전문의인 유상(柳O)이 주도해 화독탕(化毒湯)을 투여하면서 열이 차츰 가라앉았고, 10월 29일 얼굴에 딱지가 떨어지면서 호전됐다. 주목할 사실은 천연두가 가장 심할 때 사용한 사성회천탕이 중국 서적에도 나타나지 않는 우리만의 독자적인 처방이라는 점. 유상은 이 탕약으로 임금의 천연두를 치료한 공으로 서얼 출신임에도 동지중추사로 승진한다. 그의 아버지는 ‘증보산림경제’를 지은 유중림이다.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을 괴롭힌 가장 무서운 질병은 천연두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발진성 질환으로 전 세계 전체 사망 원인의 10%를 차지할 만큼 사망률이 매우 높은 질환이었지만 1979년 전 세계적으로 사라진 질병으로 선언됐다. 1885년 개원한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 1차 연도 보고서에 따르면 4세 이전의 영아 40∼50%가 천연두로 사망했다고 적혀 있을 정도이니 그보다 200여 년 전 당시 명성왕후가 받은 충격을 짐작할 수 있다. 명성왕후는 혼수상태의 숙종을 살리기 위해 궁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모두 검역할 것을 직접 지시하고, 한편으로는 몰래 무속적 치료를 시도한다. 실록은 이렇게 기록한다.
“임금이 두질을 앓았을 때 무녀 막례가 술법을 가지고 금중에 들어와 기양법을 행했는데 대비가 매일 차가운 샘물로 목욕할 것을 청하였다.”
명성왕후는 고3 수험생 어머니가 기도하러 가듯 무속인 막례를 찾아 극단적 기양법(祈禳法)을 감행하는데, 엄동설한에 삿갓을 쓰고 소복 차림으로 물벼락을 맞는 찬물샤워를 반복하라는 주문이었다. 그 때문일까. 명성왕후는 이를 실행에 옮긴 후 병이 들었다. 정확하게 숙종이 완쾌되고 닷새 후, 몸져누웠고 보름이 지날 때쯤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조선 여인의 거룩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