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커트 보니것 등 미국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펴낸 찰스 스크라이브너스 선스. 1846년 창업 땐 공동 창업자 찰스 스크라이브너와 아이작 베이커의 성을 딴 베이커앤드스크라이브너였다. 베이커의 지분을 사들인 스크라이브너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 세 명이 공동 경영하면서 ‘찰스 스크라이브너의 아들들’이 되었다. 서양에는 이렇게 창업자나 발행인 성을 딴 출판사 이름이 많다.
1945년 건국공론사로 출발한 현암사는 1951년부터 현암사라는 이름을 썼다. 현암(玄岩)은 시인 박목월이 창업자 조상원에게 지어준 아호다. 1946년 ‘건국공론’ 제3호에 박목월의 시 ‘나그네’(당시 제목 ‘남도 삼백리’)가 발표되는 등 두 사람은 친분이 깊었다. 1913년 고서점으로 시작한 일본 출판사 이와나미쇼텐(巖波書店)은 창업자 이와나미 시게오의 성을 따랐다. 이렇게 성이나 아호를 내건다는 것은 부끄럽지 않게 책임을 다하겠다는 결의 그 자체다.
푸른역사 푸른숲 푸른솔 푸른사상 푸른지식 푸른나무 푸른책들 푸른길 푸른영토 푸른육아 등등. 출판사 이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색깔은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솔이나 풀의 빛깔과 같이 맑고 선명한 색이다. 맑고 깊고 늘 젊으면서 오래가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을 것이다. 이름과 실상이 들어맞아 명실상부(名實相符)하게 이름값을 하는 출판사는 모든 출판인의 꿈이자 많은 독자들의 기대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