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장복추(張福樞·1815∼1900) 선생의 ‘사미헌집(四未軒集)’ 권6 ‘척유록(摭幽錄)’에 수록된 이야기입니다. ‘척유록’은 ‘이름 없는 백성들의 숨겨진 행적을 찾아 기록하여 세상에 알리는 글’입니다. 서도치라는 사람이 꽃뱀을 잡아 약으로 써서 아버지의 병이 나았는데, 이번에는 죽은 뱀의 원수를 갚고자 큰 뱀이 집으로 날아들었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벌벌 떨고 있을 때 서도치가 담담히 나섭니다. “내가 그 죄를 받으마.”
서도치가 뱀에게 말하였다. “천년 묵은 꽃뱀을 죽인 것은 실로 자식 된 자의 절박한 정성에서 나온 것이지만 나는 너에게 원수가 되었다. 암컷은 수컷을 위하여, 수컷은 암컷을 위하여 복수하는 것은 이치로 보아 진실로 당연하다. 너는 너의 원수를 갚고 나는 내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는 것, 이 모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니, 나는 비록 죽더라도 유감이 없다(汝復汝讎, 吾瘉吾父病, 皆爲所當爲, 則雖死無憾).” 그러고는 방 한가운데 누웠다. 뱀이 서도치의 온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칭칭 감더니, 조금 있다가 문득 풀고 떠나가 버렸다.
나의 정의가 남과 부딪힐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각자 할 일을 할 뿐 죽어도 유감이 없다는 주인공의 담대함이 서늘하면서도 감동적입니다. 장복추 선생의 마무리입니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