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희생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 동아일보DB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문재인의 청와대는 어떤가. 전보다 더 강해 보인다. 대표적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을 생각해보자. 청원을 받는 청와대는 대통령비서실이다. 법률적 근거라고 해봐야 정부조직법 14조에 있는 단 두 조항, ‘1.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비서실을 둔다. 2. 대통령비서실에 실장 1명을 두되, 실장은 정무직으로 한다’뿐인 기구다. 이마저도 특별한 것이 아니다. 21조에 있는 ‘국무총리비서실’의 두 조항 역시 대통령을 국무총리로 바꾼 것 말고는 글자 하나 다르지 않다. 그런 청와대가 입법, 행정, 사법의 기능 모두에 대해 청원을 받고, 민정수석을 통해 정치와 사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보다 훨씬 더 민주적 규범에 맞는 국회 운영위 참석은 회피하면서, 민정수석이 이런 일을 주관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혹자는 대통령을 대신해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데, 큰일 날 소리다.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 행사한다면, 그건 군주정이나 권위주의에 가까운 일이 된다. 대통령조차 입법과 사법 기능에는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
현행 ‘청원법’에 따르면, 청원의 내용은 해당 국가기관의 권한에 한정되어야 한다. 국회는 입법 청원을 받는 곳이고, 국민권익위원회는 행정 기능과 관련해 청원을 받는다. 그런데 청원의 내용과 상관없이 20만 건의 추천을 받으면 효력이 발생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청원의 성립 기준부터 법률에 어긋난다. 그런데도 마치 전통시장 근처의 대형마트처럼, 시민들의 열정은 청와대로 몰린다. 권한의 합리성이 아니라 힘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기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여타 정부 조직은 위축되고 시민사회의 역할 역시 빛을 잃는다. 청와대의 직접적인 반응을 곧바로 얻을 수 있다며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정부 부처의 느리고 복잡한 행정 절차는 지탄의 대상이다. 그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결과에 따라 정당과 의회가 법을 만들고, 공무원들이 집행하고, 검찰과 법관 역시 주어진 역할을 하길 바란다. 심지어 국회를 해산하자거나 입법·행정·사법부를 청와대 밑에 두자는 의견도 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질지 모른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정부가 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책임을 묻는 ‘최종적 평결자’이다. 공약을 제대로 실천했는지에 따라 해임과 재신임의 평결을 내리는 주권자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권력관계는 역전된다. 시민은 권력자의 선한 결정을 기다리는 백성이 된다. 청와대를 더 키워서라도 그 요구들을 다 수용해야 할까. 그렇게 해서 감당할 수 있다면 모를까, 청와대가 대통령 보좌를 넘어 할 수도, 또 해서도 안 되는 일을 지속하면 내각과 정부 부처, 집권당과 의회 등 민주적 제도와 절차, 기구들이 무기력해지는 딜레마를 피할 수 없다. 이게 괜찮은 걸까. 선출제 군주정처럼 대통령과 적극적 지지자만 보이는 ‘청와대 중심 정치’가 민주적 최선일 수 있을까. <끝>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