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 ‘cruel intentions.’ 한국 제목은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가끔 혼자 피식 웃을 때가 있는데요. 미국 영화를 봤을 때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영화의 한국 제목을 봤을 때입니다.
미국 영화 제목은 당연히 영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대부분 한국어 제목으로 바뀌던데요. 단순히 영어 제목을 번역하는 수준이 아니라 별도의 의미를 가진 한국어 제목이 달립니다.
‘Cruel Intentions’(잔인한 의도)라는 미국 영화가 있습니다. 의붓남매가 한 여자를 유혹하는 내기를 하는 내용이죠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 라는 유명한 18세기 프랑스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수차례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주말에 케이블TV를 틀면 자주 등장하는 영화였습니다. 우리나라 케이블TV에서도 이 영화가 종종 방송되던데요. 한국 개봉 때도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Cruel Intentions’는 영화 스토리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제목입니다. 그런데 한국 TV 스크린 오른쪽 위에 조그맣게 써진 제목을 보니 한국 제목은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이었죠. 근사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제목입니다. 삼류 영화 분위기가 나지 않나요.
미국 영화 ‘Shallow Hal.’ 한국 제목은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이 영화의 원 제목은 ‘Shallow Hal.’ 두 단어의 리듬감까지 고려해 만든 ‘웰메이드’ 제목입니다. ‘Hal’은 블랙의 극중 이름. ‘Shallow(쉘로우)’는 미국인들이 많이 쓰는 단어로 ‘(깊이가) 얕은’이라는 뜻이지요. 사람의 성격, 인성을 말할 때 많이 씁니다. 생각이 편협하고 겉모습만 따지는 사람. 한마디로 말하면 ‘골빈’ 사람입니다. 극중 할의 성격이 그랬죠.
한국 영화 제작자들은 제목을 정성스럽게 짓는다고 하죠. 흥행을 결정지을 수도 있으니까요. 미국 영화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잘 만든 영어 제목 제쳐두고 어색하고 영화 내용과 어울리지도 않는 한국 제목을 써야할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영어 제목을 발음그대로 한국말로 쓰고 영어도 병기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런 영화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죠.
요즘 미국 영화 제목은 길지 않습니다.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라네요. 이 글에서 사례로 든 ‘cruel’ ‘shallow’ 등은 알아두면 좋은 단어들입니다. 한국인들이 웬만큼 알거나,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영어 단어와 표현들. 영화 제목으로 나오면 사전도 한번 찾아보고, 그렇게 영어 공부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