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산 참성단에서 열린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성화 채화식.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높은 산’을 자칭하는 중국에서 가장 ‘존귀한 산’으로 대접하는 곳이 바로 태산(1532m)이다. 백두산과 한라산보다 낮은 키이지만 중국인이 가장 많이 찾고 신성시한다. 중국 오악 중 으뜸인 ‘오악독존(五嶽獨尊)’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 넘게 천하제일의 지위를 굳건히 누려오고 있다.
진시황을 비롯해 역대 72명의 중국 황제가 이 산에서 하늘신(天帝)에게 자신이 하늘의 아들(天子)임을 알리는 ‘신고식’을 치렀다. 하늘신의 적통으로 ‘인가’를 받아 세상을 다스린다는 중국몽의 근거지가 바로 태산인 것이다.
마니산은 여러모로 태산과 비교된다.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는 4000여 년 전인 고조선 시기에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으로 마니산의 참성단을 소개하고 있다. 고려 원종이 1264년 참성단에 올라 제천의식을 치렀다거나, 고려 말의 재상 경복흥이 참성단에서 미래를 알려주는 신탁(神託)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태종 때 문신 변계량은 “우리 동방은 단군이 시조인데, 대개 하늘에서 내려왔고 천자가 분봉(分封)한 나라가 아니다”고 하며 독자적인 천제의식을 지내왔다고 밝혔다.
참성단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풍수적으로는 천기가 곧장 내려와서 하늘과 교감할 수 있는 천하 대명당이다.
마니산의 기운은 우주 공간까지도 뻗쳤던 모양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인공위성을 달에 착륙시켜 지구를 촬영했더니 지구 중심부에 점 하나가 있고 주변에 실오라기 같은 흔적이 있어 판독해본 결과, 점은 대한민국의 마니산이고 실오라기는 중국의 만리장성으로 밝혀졌다. 1974년 내한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100만 명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한 말이니 허언은 아닐 것이다.
태산은 물이 나지 않는 암벽지대이지만 참성단 정상에서는 불과 40년 전까지만 해도 천지 정화수(井華水)인 물이 솟아올랐다. 산 정상의 암벽에서 물이 치솟는 곳은 영험한 터로 보면 틀림없다. 우리 조상들은 천연의 정화수를 사용해 신성한 제천의식을 치렀던 것이다.
사실 ‘천자’라는 말도 중국 중원에서 기원한 게 아니다. 후한(後漢)의 대학자 채옹(133∼192)은 “천자라는 말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삼기 때문에 천자라고 한다(天子之號 始於東夷 父天母地 故曰天子)”고 밝혔다. 결국 천제나 천자의식은 동이 계열로 추정되는 우리가 원조였고 한족은 그 아류인 셈이다.
천자의 덕을 갖추지 못한 채 태산에서 천제를 강행한 진시황의 봉선 일화가 과거의 해프닝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중국몽을 꿈꾸는 현재의 중국 지도층은 과연 그만한 자격과 덕행을 갖추고 있을까. 더불어 한국의 지도층은 진정한 천자의 후손다운 자존감을 지키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