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좋아하는 정치인에 관한 일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편들고 싸우는 이들을 제이슨 브레넌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정치철학)는 ‘훌리건(Hooligan)’이라고 했다. 그는 저서 ‘민주주의에 반대한다(Against Democracy)’에서 민주사회의 시민을 세 부류로 나눴다. 정치에 무관심한 ‘호빗(Hobbit)’, 정치적 지식수준이 높고 분별력 있는 ‘벌컨(Vulcan)’, 그리고 자신의 정치 성향에 맞춰 정보를 편식하고 반론을 묵살하는 훌리건이다.
훌리건이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듯 정치적 훌리건은 다양한 사람들이 숙의를 통해 합의를 이뤄내는 민주주의 경기장을 훼방 놓는다. 정치적 광팬들에게 객관적 사실이나 이성적인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인 ‘문빠’들에게는 ‘반문질(문재인에 반대하는 행동)’이 곧 적폐다.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을 취재하던 기자가 폭행당하는 건 “이적 행위”다. “일 잘하는 행정관(탁현민)의 경질에만 관심 있는”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해임해야 마땅하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논쟁을 거부해선 안 된다”는 뻔한 소리를 했다가 적폐세력이 됐다.
이들에게 정치는 공동체의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지난달 칼럼 ‘정치가 당신의 우상이 될 때’에서 “요즘 사람들에게 정파성이란 특정 정당의 정치 철학이나 정책에 관한 지지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가족 종교 공동체의 유대관계가 사라져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정치를 우상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브룩스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정치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공동체를 복원하자는 제안을 했다. 민주사회 시민들의 대부분은 호빗이거나 훌리건이라고 진단한 브레넌 교수의 해법은 좀 더 극단적이다. 그는 돌팔이에게 환자를 맡기지 않듯 책임 있는 투표 행위를 할 수 없는 유권자들에게는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격해 공론장을 무너뜨리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은 하고 있나. 반대편에 문자 폭탄을 던지는 행위를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으로 해석하는 수준으로는 민주주의의 적인 훌리건들의 난동을 막을 수 없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