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논설위원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 현직 회장을 포함시킨 하나금융지주의 임원 선출 구조를 두고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셀프 연임’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금융지주사 지배구조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금융계는 민간에 개입하는 관치금융이라고 맞서는 중이다. 지배구조법에 회의적이던 차에 터질 게 터졌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현재 당국의 행보는 전형적인 관치와는 다르다. 관치 논란, 임원 교체, 봉합의 순서대로 흐르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의 관치에는 당국자의 주도적 의지, 강한 추진력이라는 관치의 속성이 모조리 빠져 있다. 현 정권에 지분이 없는 두 금융 수장은 지배구조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기 힘든 한계가 있다. 최종구는 지난 정부에서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하다가 수출입은행장 등 요직을 거친 뒤 올 7월 위원장에 올랐다. 등이 떠밀리지 않고서야 보수정부에서 가만있다가 진보정부가 됐다고 지배구조 문제를 먼저 들고나오기 어렵다.
최흥식이 역공을 받을 수 있는 지배구조 문제를 거론한 것은 자신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검사 일정이 다 있었던 것이고, 그것에 따라서 한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은 두 달 전부터 KB, 하나, 신한, NH농협금융지주에 대한 리스크 검사를 실시했고 이후 신임 원장이 검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공개하는 작업을 톱니바퀴처럼 진척시켰다.
정치 지형 변화에 늘 대비하는 금감원의 속성을 알면 이해하기 쉽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 인물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고 그러려면 사전 준비를 해두는 암묵적 매뉴얼이 이 조직에 있다. 이 매뉴얼이 청와대나 당국의 판단에 따라, 혹은 관성처럼 스르륵 작동한다. 이번에는 금융당국 수장들의 독자적 판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구조 논란의 시동을 걸었다. 최흥식은 ‘김정태라는 특정인만 겨냥한 게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위한 것’이라는 자기 보호용 방패 하나만 들고 있을 뿐이다.
정부의 압박이 연봉 13억 원짜리 회장 자리에 친정부 인사를 앉히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있다. 그럴 수 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지주사의 경영구조를 노동 중심으로 뜯어고치려는 큰 퍼즐의 한 조각일 수 있다. 퍼즐 맞추기에 속도를 내는 쪽은 금융당국이 아니라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다. 혁신위는 어제 지배구조 개선의 방편으로 금융회사에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것이 노사를 공동운명체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했다. 최종구는 혁신위안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했다. 제 코가 석자인 관(官)은 지금 알아서 기는 중이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