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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딥포커스]동유럽-EU 관계 열쇠 쥔 ‘폴란드의 마크롱-체코의 트럼프’

입력 | 2017-12-21 03:00:00


“영어도 독일어도 능통한 새 총리, 유럽연합(EU)과의 관계 개선이 기대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 ‘폴란드가 EU와의 관계에서 분수령에 놓여 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11일 임명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마침 6일 안드레이 바비시 ANO 대표가 체코 총리로 임명돼 동유럽 2개국의 새 리더십이 유럽의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비셰그라드 4국(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으로 대표되는 동유럽은 EU의 야당 역할을 맡는 동시에 EU의 골칫거리 취급을 받아 왔다. 개발도상국인 이들은 EU로부터 큰 경제적 혜택을 받고, 러시아의 위협을 막기 위해 회원국들의 군대가 주둔해 있는 EU의 수혜자면서도 이민과 난민 수용의 균등 배분이라는 EU 정책을 가장 강하게 거부하는 비협조 국가다. 게다가 최근 잇달아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정권이 탄생하면서 EU의 기본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독일과 프랑스 등 서유럽과 갈등을 빚고 있다.

2015년 10월 폴란드에서 법과정의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2년 동안 폴란드와 EU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졌다. 폴란드 정부의 언론 장악과 사법권 장악 시도를 비판해 온 EU는 폴란드 의회가 지난주 판사 임명권을 사실상 의회가 갖도록 하고, 대법관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유임 허가를 새로 도입하는 등 사법부 무력화를 추진하자 폭발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0일 폴란드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유럽 헌법 격인 리스본조약 7조 적용을 검토하는 회의를 개최했다. EU가 추구하는 인간 존엄, 자유, 민주주의, 평등, 법치 등의 가치를 훼손할 경우 제재를 가하는 조항으로 실제 적용된 전례를 찾기 힘들지만 폴란드의 ‘마이웨이’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서유럽은 28개 회원국 전원의 동의가 필요해 사실상 불가능한 폴란드의 EU 투표권 박탈도 성립 요건을 완화해서라도 관철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폴란드는 “국내 정치에 간섭 말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

이런 갈등 속에 등장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제2의 마크롱’으로 불리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신임 총리는 학창시절 반공 시위에 앞장서다 1990년대 이후 기업가와 은행가로 진로를 바꿨다. 폴란드은행 자호드니 WBK 이사회 의장까지 지낸 뒤 정치에 입문해 개발부 장관과 재무장관을 지냈다. 무소속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3월 법과정의당에 합류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로스차일드와 경제장관을 거치고 무소속으로 정치를 시작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비슷한 대목이 많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EU 경제 통합을 연구하고 EU법 책을 쓴 EU 전문가이기도 하다.

바비시 총리

6일 체코 총리로 임명된 ANO 대표 바비시는 ‘제2의 트럼프’로 불린다. 체코의 농업·농화학 분야의 대표적 대기업인 아그로페르트의 최고경영자(CEO)로 재산이 40억 달러에 달하는 체코 최대 부자 중 한 명이다. 게다가 체코 내 강경한 반이민 정책을 주도하는 등 포퓰리스트 성향도 강하다. 그는 10월 총선에서 29.6%로 아슬아슬하게 1위를 차지했다.

두 신임 총리의 탄생에도 불구하고 동유럽과 EU의 관계 개선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EU의 리스본 조약 7조 적용은 아주 치사한 협박”이라고 주장하는 등 연일 비판하고 있고, 바비시 총리는 전 정권보다 더 강하게 EU의 이민 수용에 반발하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