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맑음. 재림. #271 Pat Boone ‘White Christmas’(1959년)
미국 가수 팻 분의 ‘White Christmas’ 음반 표지.
팻 분. 이 괴상한 서양 아저씨 이름이 꼬마 버전의 나에게 크리스마스에 관한 첫인상에 가까웠던 것이다. 12월이 오고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질 때쯤이면 어머니는 형에게 말씀하셨다. “크리스마스니까 우리도 팻 분 좀 들어보자.”
그러면 형은 집에 있는 전축의 턴테이블에 팻 분의 LP판을 올리고 바늘을 가져다댔다. 음반 표지에 있는 지나치게 멀끔한 인상의 백인 아저씨가 바로 미국 가수 팻 분. 이내 크리스마스는 스피커에서 풀려나왔다. 그것은 먼 나라에서 청각을 타고 우리 집 거실에 내려온 환상이었다. 팻 분의 비단결 같은 목소리를 듣다 보면 꼭 가보지도 않은 데 가보는 느낌이 들었다. 새하얀 눈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두껍게 덮여 고요한 이국의 정원. 그곳에 붉은빛 트리가 놓여있는 미국이란 부국의 가정이 환상 속에 펼쳐졌다.
‘White Christmas’는 1942년에 발표된 곡이다. 미국 가수 겸 배우 빙 크로스비 주연의 영화 ‘홀리데이 인’에 실려 처음 공개되자마자 큰 인기를 누렸다. 그때는 마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국이 참전한 시점이었다. 당시 엄혹한 전장에서 첫 겨울을 맞는 장병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고향의 성탄절 정경을 떠올렸다고 한다.
‘꿈속에 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 노래 첫 소절은 음악적으로도 좀 특별하다. 이 멜로디는 건반 위에 잇따라 자리한 다섯 개의 미묘한 반음을 차례로 오르내린다. 그래서 마치 세월의 장막을 은근히 걷어내고 환상 속으로 듣는 이를 이끄는 듯하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