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
‘신라젠’이란 회사 이름의 기원은 삼국시대 ‘신라’와 영국 의학자의 이름을 합성한 회사명이다.
귀족들이 온천욕으로 천연두를 다스렸다는 ‘신라’, 그리고 ‘우두법’(소의 천연두)을 발견한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 박사의 이름을 따 ‘신라젠(SILLAJEN)’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이는 신라젠의 ‘펙사벡’이 ‘우두 바이러스’를 활용해 암을 치료하는 면역항암제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의미한다. 또한 천연두와 같이 언젠가는 암을 정복하겠다는 의지도 담고 있다.
‘항암바이러스+ICI’로 폭발적 효과 노려
1세대 화학항암제는 암세포가 다른 세포보다 빨리 자라는 점을 이용해 정상세포보다 빠르게 자라는 세포를 공격하도록 해 암 치료를 했지만 성장이 빠른 다른 세포도 공격하는 탓에 탈모나 구토 등 부작용이 따랐다. 2세대 표적항암제는 특정 유전자만 공격해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에게만 적용 가능하다.
반면 3세대 면역항암제는 암 환자의 면역력을 키워 암과 싸우는 힘을 키워주는 치료제로 항암제 부작용이 거의 없고 생존 기간도 길어서 최근 제약시장에서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치료받을 수 있는 암이 피부암, 간암 등 한정적이고, 환자의 20∼30%만이 이 약물에 반응한다는 단점이 있다. 신라젠 관계자는 “반응하지 않는 나머지 환자들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와 암치료 대상을 늘리고자 하는 것이 3세대 항암제를 개발하는 많은 제약사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 고민의 돌파구로 신라젠은 ‘펙사벡’과 ‘ICI’ 병용 연구를 시작했다. ICI란 면역관문억제제를 뜻한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세포들이 자신을 면역세포들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표지하는 물질이나, 종양 내의 무력화된 면역세포들이 발현하는 물질을 인식하여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차단시키는 브레이크 시스템을 풀어주게 된다. 따라서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를 정상세포가 아닌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종양 내 환경을 변화시켜 줌으로써 비교적 부작용이 적은 항암제가 되는 것이다. 암세포는 면역관문 분자들로 자신의 몸을 치장해 면역체계의 눈을 피해 면역체계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한다. 이런 방어가 통하지 않도록 억제제를 써 암세포의 변신을 막는 것이 ICI 요법이다.
신라젠은 펙사벡과 ICI 병용연구를 통해 신장암, 대장암 잡기에 나섰다. 특히 대장암 임상은 미국의 국립암연구소(NCI)와 공동연구 중이다. 미국 정부기관과의 신약 개발에 관한 공동연구 협약은 국내 바이오 기업 중 신라젠이 처음이다.
신라젠과 NCI는 대장암 환자 중 ICI 단독 요법이 잘 듣지 않는 환자군을 대상으로 ICI가 어떻게 하면 잘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전연구에 펙사벡을 병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신라젠은 미국의 리제네론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공동연구를 추진 중이다. 이 연구는 펙사벡과 병용으로 신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비교적 규모가 큰 임상 1상이다. 또한 신라젠은 파트너사인 유럽의 트랜스진, 홍콩의 리스파마와 등과 펙사벡+ICI의 병용요법 연구를 통해 다양한 암을 대상으로 병용치료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대부분의 공동연구는 외부 연구소의 러브콜을 계기로 시작된 것이다. 세계 유수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연구개발을 한다는 것은 신라젠에 의미 있는 도전이다.
‘암 환자 희망’ 바이러스 암치료
2015년 10월 빅바이오텍파마(대형생명공학제약업체)인 암젠이 바이오백스의 HSV헤르퍼스 바이러스를 이전해 흑색종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은 것이 계기가 돼 2000년대에 들어 항암바이러스 치료제의 인식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신라젠도 펙사벡을 이용한 임상연구에서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다.
신약 출시를 위한 마지막 관문에 선 신라젠은 펙사벡을 통해 암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고, 우리나라가 바이오 강국이 될 수 있는 데 일조할 계획이다.
신라젠 관계자는 “약을 개발하는 것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지만 가능한 분야라고 생각한다”며 “헤쳐 나가야 할 난관도 많지만 약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또 우리나라가 바이오 강국이 되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식 기자 m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