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새해엔 더 사랑하게 하소서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식솔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그렇게 뿌듯합니다. 올해엔 다 같이 교회에서 연말을 보내고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게 소원인데 아마 불가능하겠죠? 마음먹기 나름인데 아이들 생각은 저와 다른가 봐요.”―이문수 씨(71·부산 거주)
“올해 아빠가 우울증으로 고생하시다가 최근에 발작 증세를 보여 입원까지 하셨어요. 엄마가 일을 하셔서 늘 곁에 계시지 못해 (결혼해 떨어져 사는) 제가 수시로 찾아뵀는데 잘 모시지 못했어요. 모든 일에 트집을 잡아 괴롭히니 저도 한계가 오더라고요. 죄송한 마음을 담아 연말에 가족파티를 열고 손편지를 드릴 계획입니다.”―현모 씨(39·직장인)
“올해엔 유독 학교 과제, 과외, 다문화가정 자녀들 멘토링 봉사 등으로 바빠 고향에 거의 못 갔어요. 그래서 연말에 부모님과 함께 4박 5일간 대만으로 여행을 다녀오려 합니다. 대만은 모녀끼리 함께한 첫 여행지인 데다 어머니가 특히 좋아하는 나라예요. 10년 만의 가족여행을 앞두고 마음이 뿌듯하네요.”―한송희 씨(23·대학생)
“아들 며느리가 두 돌 된 손녀를 저한테 맡기고 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 파리로 여행을 떠나요. 친구들은 평소에도 맞벌이하는 아이들 대신 육아로 고생하는데 여행 갈 때도 아이를 떠맡기느냐며 눈을 흘기던데 저는 좋아요. 힘들지만 손녀딸 보는 게 놀이이자 휴식이고, 요즘 유일한 기쁨이거든요.”―김란희 씨(60대 주부)
함께 웃으면 복이 와요
“명동성당은 매년 그해의 주요 사건에 따라 주제를 바꿔 건물을 장식합니다. 2018년은 주교좌 명동대성당이 봉헌된 지 120년이 되는 해라서 신자의 메시지 120개를 새긴 원형판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뜻에서 304개의 별을 장식했죠. 이런 상징물들이 상처받은 이웃에게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정혜원 씨(51·주교좌 명동대성당 사목협의회 기획홍보봉사 분과장)
“구세군은 전국 410여 곳에서 자원봉사자 6만 명이 12월에 집중적으로 모금활동을 합니다. 명동은 최초로 모금을 시작한 장소이고 고액 기부자도 많아 책임감을 갖고 일하죠. 명동의 모금액은 하루 평균 50만∼100만 원 정도입니다. 모금액이 가장 큰 곳은 잠실 롯데월드와 코엑스 쪽이죠.”―변종혁 씨(37·구세군 사관학생)
바쁘지만 이 맛에
“연말에는 송년회 등으로 술자리가 많아져 폭행사건이 늘어납니다. 음주운전도 많아지고요. 그래서 지역 순찰근무와 음주운전 측정을 평소보다 강화하죠. 고되지만 ‘경찰관들 덕분에 든든하다’는 인사를 받으면 힘이 납니다. 그 맛에 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한모 씨(27·경찰관)
“학생들 방학, 크리스마스, 신정, 설 명절에 맞춰 개봉하는 영화가 많아서 영화사는 연말에 훨씬 바빠요. 그래도 올해의 마지막을 그냥 보내긴 싫고 잠을 줄여서라도 송년회엔 꼭 참석하려고 해요.”―이모 씨(27·영화사 직원)
“이벤트 업체는 연말에 평소보다 예약이 3배까지 많아져요. 저희 가게는 프러포즈 같은 이벤트를 주로 진행하는데 예약이 꽉 찼습니다. 노래 부르기, 맞춤 케이크 선물 등 방식은 제각각인데, 최근에 언어장애가 있는 손님이 한 프러포즈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두 분 다 장애가 있어서 시각적 효과에 최대한 신경을 썼는데, 정성껏 준비한 영상편지를 재생하니 두 분이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분들 덕분에 뿌듯한 마음으로 연말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이모 씨(34·더 로즈 신도림점 운영)
부대에서 보는 일출은 싫어
“TV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크리스마스와 새해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습니다. 군 복무 중인데 다들 같은 생각이라 연말 휴가 신청이 밀려 있습니다. 부대에 남아 있으면 새해 첫날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뒷산에 올라가 해뜨는 것도 봐야 하거든요. 피곤한 일이죠. 내려와서 먹는 떡만둣국은 괜찮지만요….”―이민주 씨(23·군인)
“내년 2월에 회계사 시험이 있어서 ‘열공 모드’를 유지해야 합니다. 요즘 오전 8시 반부터 다음 날 오전 1시 반까지 매일 거의 15시간씩 공부하고 있어요. 학원에선 더 배울 게 없을 것 같아서 혼자 공부하는데 외롭고 우울하고 때론 좌절감도 듭니다. 하지만 시험이 코앞이니 바깥 분위기는 모른 척 달려야죠.”―안찬희 씨(25·대학생)
내가 더 소중해
“방학식 다음 날인 12월 30일에 스리랑카로 떠날 계획입니다. 헤르만 헤세가 쓴 ‘인도 여행’이라는 책에 ‘스리랑카는 원시성을 간직한 나라’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책을 읽고 여행지를 스리랑카로 정했어요. 여행을 다녀오면 조금은 욕심을 내려놓고 새해를 맞을 수 있겠죠.”―신모 씨(56·중학교 교사)
“여든이 넘었어도 평소엔 생각 없이 지내다가 연말이 돼야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네요. 올해엔 벗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시기마다 부침을 겪다 보니 남은 인연이 그리 많지 않네요. 손녀에게 ‘지금 친구를 많이 만들어 둬라. 친구가 자산이다’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이형래 씨(83·서울 구로구 거주)
“11월에 오래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연말에 집중적으로 다친 마음을 돌보려 합니다. 한 시기를 지나갈 때는 정리를 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이 생기는데 그러지 못해서 힘들었어요. 혼자 작은 서점 투어를 하면서 불필요한 감정은 싹 털어 버리려고요.”―홍지수 씨(30대 직장인)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청담동 숍에 가서 피부 관리와 머리 손질을 하고 치과에서 미백치료도 받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못 입어본 지 10년 넘은 화려한 원피스 차림으로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신년을 맞을 거예요. 아이 셋을 줄줄이 낳으며 10년 넘게 주부로만 생활하니 미친 듯 일하고 놀던 예전의 제가 그립습니다. 두 달 전부터 남편에게 한풀이 한 번만 하게 해달라고 작업 중입니다.”―김유경 씨(39·세 아이의 엄마)
“추억이 깃든 여행지에 가서 그곳의 일상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20, 30대 시절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그중에서 스코틀랜드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다국적 친구들과 ‘디기디비딥’으로 한마음이 됐던 밤과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령투어’가 특별했죠.”―김모 씨(40·IT업계 종사)
이설 기자 snow@donga.com·조경준 인턴기자 한국외대 경제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