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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클러 없는 필로티 1층은 ‘거대한 아궁이’

입력 | 2017-12-23 03:00:00

필로티, 지진 이어 화재도 취약
사방서 공기 유입 불쏘시개 역할… 주택과 통하는 문 하나밖에 없어
주차장 화재 인식에 시간 걸리고 뒤늦게 알아도 내려오기 어려워
전문가 “불연재-자동방재 필요”




22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필로티 건물 주차장. 천장에 스프링클러같이 화재를 막을 설비가 없다.

29명이 숨진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참사로 필로티(벽체를 없애고 기둥만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방식) 구조가 지진은 물론 화재에도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책을 취하지 않는 한 도시 안전을 저해하는 ‘뇌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필로티 건물은 2000년대 초반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1층 거주자의 사생활 침해 문제도 해소할 수 있어 전국으로 퍼졌다. 2015년 기준 전국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의 88.4%(1만2321동)가 필로티 구조였다. 그러나 화재에는 사실상 무방비였다.

22일 동아일보가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와 중구 만리재로의 필로티 건물 20곳을 점검했지만 스프링클러나 방화문을 갖춘 곳은 없었다. 2015년 지은 아현동 5층짜리 주거용 건물은 차량 24대를 댈 수 있는 1층 주차장 천장의 화재감지기 4대가 전부였다. 주택과 통하는 문은 주차장 한가운데 계단과 연결된 강화유리문뿐이었다. 주차장에서 불이 나면 24가구 모두 내려오기 어렵다. 화재감지기조차 없는 건물도 13곳이었다.

필로티 건물 주차장은 유류(油類)가 든 차량이 서 있고, 천장 단열재는 불이 잘 붙는 소재로 된 경우가 많다. 불이 붙으면 삽시간에 번진다. 최승복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팀장은 “불이 커지면 극심한 유독가스와 열기가 위로 향하는 문과 계단을 타고 순식간에 솟구친다”고 설명했다.

최 팀장과 최돈묵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차가 들어찬 필로티 주차장에서 불이 나면 2분 30초 만에 강화유리문이 깨지고 이어 8초 뒤 불은 계단을 타고 확산됐다. 10층 건물이 4분 46초 만에 화염에 휩싸였다. 이번 스포츠센터 화재에서도 불이 난 지 약 3분 뒤 주차장 천장 전체가 화염으로 뒤덮였다.

최 팀장은 또 “필로티의 큰 문제는 위층에서 지상의 화재를 인식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화재도 주차장에서 발생한 지 5분이 채 안 돼 위로 번졌고 이를 뒤늦게 인지한 건물 안 사람들이 대거 피해를 입었다.

필로티는 불을 지피는 아궁이 역할도 했다. 최 교수는 “불이 타는 데 필요한 산소를 필로티 구조 사방에서 들어오는 공기가 공급한다. 강화유리문은 섭씨 150도에 깨져 무용지물이다. 필로티 건물에 반드시 불연재와 자동 방재설비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필로티 특성에 걸맞은 방재 대책은 전무한 형편이다. 그나마 내진(耐震) 의무화는 2015년 3층 이상 모든 건물로 확대됐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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