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희생자 안타까운 사연들
숯덩이로 변한 건물 22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경찰, 소방관들이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화재로 건물 외벽은 검게 그을렸고 유리창은 대부분 깨졌다. 제천=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2일 오전 제천명지병원에 마련된 최모 씨(46) 빈소를 지키던 고등학교 교복 차림의 둘째 딸은 울먹였다. “나 대학 붙었다고 내년 1월에 베트남 여행가자고 했잖아. 이게 뭐가 슈퍼우먼이야….” 숨진 최 씨는 입버릇처럼 “우리 딸 대학 붙으면 해외로 가족여행 가자”고 말했다.
최 씨는 가족에게 ‘슈퍼우먼’이었다. 제천시내 모 고교 급식실 조리반장이던 최 씨는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얼마 전까지 우유와 신문을 배달했다. 그러면서도 하루도 운동을 빼먹지 않았다. 참사 당일인 21일 학생들 점심을 책임지고 난 뒤 운동을 하러 스포츠센터로 갔다. “왜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느냐”고 시어머니가 걱정하면 “엄마, 애 셋 키우려면 이렇게 해야 돼”라며 웃어 넘겼다. 최 씨는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꼭 아빠, 엄마라고 불렀다.
15세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정모 씨(56)는 엄격하지만 잔정이 많은 엄마였다. 정 씨는 딸에게 “세상을 강하게 살라”며 종종 꾸짖었다. 스포츠센터 2층 목욕탕에 가기 전 그는 딸이 다니던 중학교를 찾았다. 평소 딸이 좋아하는 브라우니를 담은 봉투를 양손 가득 든 채였다. 정 씨는 딸에게 봉투를 건네며 “오늘 축제잖아. 친구들과 맛있게 나눠 먹어”라고 말했다. 축제 끝나고 저녁에 보자던 정 씨의 그 말이 딸에게 남긴 ‘유언’이었다. 정 씨의 딸은 “나 강하게 크라고 이렇게 떠나는 거냐”며 눈물을 흘렸다.
스포츠센터 2층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지 못하고 숨을 거둔 다른 정모 씨(53)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했다. 음식점을 하는 정 씨는 겨울이 되면 엄동설한을 견뎌야 하는 달동네로 연탄을 날랐다.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했다. 정 씨는 최근 “운동을 열심히 해야 봉사활동도 잘할 수 있다”며 오래 쉬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사고 당일도 운동을 마치고 목욕하다 변을 당했다. 정 씨의 딸은 엄마가 홀몸노인을 돕는 데 열중해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광주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딸은 눈을 감은 엄마의 얼굴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서울 소재 여대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할 예정이던 김모 양(18)의 빈소는 이날 제천보궁장례식장에 차려졌다. 화학을 유독 좋아했던 김 양은 대학에서도 화학공학을 전공할 계획이었다. 사고 당일 스포츠센터 매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면접 보러 갔다고 한다. 치킨집을 하는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다며 수시 합격자 발표가 나자마자 아르바이트 자리 찾기에 나섰다고 한다. 부모는 딸의 죽음을 지금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김 양의 할아버지는 “명절 때면 그동안 내가 준 용돈으로 영양제나 옷을 사오던 착한 손녀였다”며 눈가를 훔쳤다. 올 5월에 찍은 졸업사진은 영정사진이 됐다. 긴 생머리의 김 양은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홀로 아들을 잘 키운 신모 씨(53)도 차갑게 식은 몸으로 오빠를 마주했다. 제천서울병원 빈소에 온 오빠(63)는 “만나서 할 얘기가 있었는데 ‘절에 가서 오빠 좋아하는 새알심 넣은 팥죽 끓여올게’ 하더라고요. 내일이 동지라면서….” 독실한 불교신자이던 신 씨는 참화를 당하기 전 절에 들렀다고 했다. 오빠는 “어렵게 아들을 혼자 키우면서도 늘 밝던 동생이 무심히 갔다”고 말했다.
제천=김배중 wanted@donga.com·조응형·정다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