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탕 20명 앗아간 ‘가려진 비상구’ 목욕용품 거대 수납장이 가로막고 늘 잠겨있어 사실상 무용지물 희생자들 위치 몰라 정문쪽 쓰러져… 남탕은 비상구 열어놔 전원 대피
유일한 탈출구, 목욕용품 보관소로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건물 화재로 숨진 29명 중 20명의 시신이 발견된 2층 사우나 여탕의 비상구. 화재 당시 안에서 잠긴 채 문 손잡이가 목욕용품 수납장에 가려 있었다. 숨진 희생자들은 비상구가 있는지 몰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20명의 시신은 대부분 여탕 정문 쪽에서 발견됐다. 22일 현장 확인 결과 수납장 사이는 50cm에 불과해 사람 1명이 지나다니기 어려웠다.
21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발생 당시 2층 여성 사우나의 비상구가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결정적 이유다.
22일 소방당국과 본보 취재에 따르면 화재 당시 화염이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음에도 2층 내부는 대부분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다. 불길이 타고 올라간 사우나 쪽 유리창은 깨졌다. 하지만 탈의실과 휴게실 등 사우나 외부는 바닥과 가구에 그을음만 있었다. 사우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복층 구조의 황토방(수면실) 입구에는 그을음조차 없었다. 황토방 옆이 바로 비상구다. 이곳을 통하면 비상계단으로 불과 8초면 1층으로 탈출할 수 있다.
반면 남탕이 있는 3층에서는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다. 2층과 같은 위치에 있는 비상구를 통해 대부분 탈출했다. 사우나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김모 씨(63)는 “남탕 비상구를 항상 열어 놓았다. 그래서 불이 났을 때 남탕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비상구로 나와 걸어서 계단을 내려왔다”고 말했다.
인명 피해를 키운 원인은 또 있다. 초기 진압에 필수적인 스프링클러가 모두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스포츠센터 건물주 이모 씨(53)는 “지난달 소방점검 때 스프링클러 동파를 발견해 수리했는데 이상한 소리가 나서 추가로 점검하려고 밸브를 잠가뒀다”고 말했다. 건물 주변 2차로 도로에 늘어선 주정차 차량은 소방차 진입을 지연시켰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1층 주차장 천장에서 처음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제천=김동혁 hack@donga.com·장기우·윤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