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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깬 사람중 절반이 집사는데 보태

입력 | 2017-12-23 03:00:00

주택 대출부족해 연금 헐어 충당… 작년 중도인출액 28%나 늘어
연금으로 받는 사람은 2% 그쳐… ‘노후 대비’ 도입 취지 무색




지난해 퇴직연금을 중간에 깬 사람 가운데 절반 가까운 이들이 집을 구입하는 데 이 돈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을 받는 사람의 98%는 매달 나눠 받지 않고 한번에 목돈으로 가져갔다. 2006년 도입된 퇴직연금이 안정적 노후 대비라는 당초 취지와 다르게 손쉽게 꺼내 쓸 수 있는 ‘비상금’처럼 이용되고 있다. 노후에 제대로 된 연금이 없으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위험이 커지는 만큼 퇴직연금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집 때문에 퇴직연금 깨는 사람들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기준 퇴직연금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중도 인출자 중 ‘주택 구입’을 이유로 꼽은 사람이 1만8319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중도 인출자(4만91명)의 45.7%에 해당한다. 전세보증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퇴직연금을 깬다고 답한 사람도 전체의 18.1%(7248명)였다. 퇴직연금을 헐어 집을 얻는 데 쓰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 63.8%에 달했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은 이자가 발생하는데 퇴직연금 중도인출은 이자 비용 없이 돈을 쓸 수 있어 자금을 구할 때 가장 쉽게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집값을 낼 수 있을 만큼 대출을 받지 못해 퇴직연금을 깨는 경우도 흔하다.

‘주택 구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이유는 ‘장기 요양’(25.7%)이다. 본인 또는 가족이 아파 6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기타를 제외하고 1인당 인출금액은 장기 요양이 4300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주택 구입(3000만 원), 주거 목적 임차보증금(2400만 원) 등이 이었다. 개인 회생절차 개시(10.1%), 파산선고(0.2%) 등 경제적으로 극한 상황에 내몰려 퇴직연금을 깨는 경우는 10%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퇴직연금 중도인출 금액은 1조2300억 원으로 전년보다 27.7%(2670억 원) 증가했다. 특히 전년보다 전세보증금 등을 마련하기 위한 중도인출 금액이 크게 늘었다. 임차보증금 때문에 퇴직연금을 해약하고 받아간 금액은 모두 1728억 원으로 1년 전(280억 원)보다 6배가량으로 증가했다. 인원 수도 689명에서 7248명으로 10배 넘게 급증했다.

○ 연금보단 일시금으로

안정적 노후 보장이라는 퇴직연금의 취지는 이미 퇴색됐다. 퇴직연금을 정기적으로 나눠 받는 사람은 전체 수급자의 2.2%(5866명)에 불과했다. 97.8%(26만6400명)는 한번에 목돈으로 받아갔다. 1년 전보다 5만121명이 증가한 규모다. 연금으로 나눠 받으면 일시금으로 받을 때보다 세금이 30% 감면되는데도 수령자 대부분은 목돈을 택했다.

퇴직연금은 근속기간이 1년이 넘는 근로자를 고용한 모든 사업장이 업종이나 규모에 관계없이 도입해야 한다. 지난해 전국 118만1464개 사업장 중 26.9%인 31만8374곳에서 도입했다. 다만 도입률은 업종별로 편차가 심했다. 금융 분야의 특성상 금융보험업이 60%로 높았고, 영세 자영업자들이 많은 숙박·음심점업은 6.2%로 낮았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사회안전망연구실장은 “퇴직연금은 노후 보장을 위한 중요한 수단인데 이를 중도인출하는 경우가 많다는 건 제도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선진국에선 퇴직연금을 중간에 찾으면 세금을 높게 부과해 특정 연령까지는 퇴직연금을 수령할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 우리도 퇴직연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희창 ramblas@donga.com·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