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라는 병/다카다 리에코(高田里惠子) 지음/김정원 옮김/348쪽·1만7000원·이마
책은 특히 1940년대 전후의 일본 근대화와 긴밀히 연관된 독일 문학 수용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타 외국 문학과 달리 독일 문학은 교직으로의 진출이 보장되는 학과였다. 도쿄제국대 독문과 출신 다카하시 겐지(高橋健二·1902∼1998)는 평화주의자 헤르만 헤세를 일본에 소개한 인물이다. 그는 1939년 다툼과 박해를 슬퍼하는 심정을 담은 헤세의 시집을 소포로 받은 기쁨을 에세이로 기고하고는, 같은 해 히틀러의 동방 정책을 높이 평가하는 기사를 다른 잡지에 실었다.
문학 엘리트들은 당시 출세 관문이었던 법학부 등에 진학하지 않고 문학을 택했음에도 지식인으로서의 체제 저항이나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나치즘을 찬양해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떠받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서는 헤세의 소개자 등 순수한 문학도의 탈을 쓰고 아무렇지 않게 복귀했다. 저자는 이들의 행동 기저에 깔린 출세욕, 순응주의, 여성 혐오와 남성 동맹 등을 꼬집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