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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과학을 왜 알아야 하냐고요? 재미있으니까”

입력 | 2017-12-23 03:00:00

◇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김상욱 외 6인 지음/416쪽·1만8500원·사이언스북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의 한 장면. 과학책 읽기는 미지의 우주를 탐험하는 여로를 닮았다. 이 책은 늘 설레고 경이로운 그 무한한 항로의 유용한 길잡이다. 사진 출처 kid101.com

“우리는 왜 과학을 알아야 하는가? 오늘날의 중대한 이슈들에 과학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어서일까? 과학을 잘 알면 미신이나 헛된 희망, 사기 등을 피할 수 있어서일까? 국가 경제나 문화에 과학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서일까? 답은 간단하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첫 장(章)에 인용한 ‘원더풀 사이언스’(나탈리 앤지어)의 서문이 곧 이 책을 읽어볼 만한 이유다. 과학책 읽기가 재미있는 건 거기서 얻은 정보를 확장시킬 범위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사의 고단한 갈등을 조밀하게 들여다본 언어 속에서 허우적대다 지쳤을 때 미생물, 은하계, 바닷속 이야기를 담은 과학책을 몇 줄만 읽어보라. 빌딩 숲 아우성에서 잠깐 빠져나와 먼 하늘과 구름을 올려다본 오후. 딱 그 기분이다.

추천위원 35명으로부터 취합한 ‘국내 출간된 좋은 과학책’ 리스트에서 50권을 추려 묶었다. 얼핏 무성의한 책 소개 글 묶음을 예상하겠지만 읽어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과학과 출판계 전문가인 저자들이 이름을 걸고 매주 돌아가며 한 인터넷 매체에 연재한 글이라 단조로움이 없다.

저자 중 한 사람인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머리말에 “인문학 고전과 달리 과학 논문을 일반 독자가 읽는 건 불가능하다. 사실 그런 논문은 과학자인 독자라도 세부 분야가 다르면 읽기 힘들다”고 썼다. 지동설과 만유인력에 대해 알기 위해 꼭 갈릴레이의 ‘대화’(1632년)와 뉴턴의 ‘프린키피아’(1687년)를 완독할 필요는 없단 얘기다.

“과학 이론을 만든 본인이 쓴 책을 읽는 건 그 이론의 역사적 의미를 확인하는 것 말고는 과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학 이론은 처음 제안될 때의 내용이나 형식 그대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선정된 50권에 보어의 원자모형, 슈뢰딩거의 파동역학, 겔만의 쿼크 논문은 당연히 포함되지 않았다. 저자의 명성이나 책의 인지도보다는 ‘지금 그 책을 읽는 독자에게 의미가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도 특징이다. 그로 인해 리처드 도킨스의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가 빠지고 그의 ‘눈먼 시계공’이 들어갔다.

저자들이 스스로 밝혔듯 수학 분야 책이 1권(모리스 클라인의 ‘수학의 확실성’)만 선정된 건 아쉽다. 국내 저자의 책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는 절판된 까닭에 도서관을 찾아갈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이 책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는 과학책 바다에서 표류를 면하게 해줄 든든한 나침반임은 틀림없다.

“과학 저널 속에 박제돼 있는 숱한 경이로움을 해동시키고 요리해서 보통의 세상에 내놓는 사람들이 과학 저술가다. 과학이 어려운 건 독자의 문제가 아니다. 과학은 원래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좀 어렵더라도 새로움을 즐기려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경이로운 세상이 눈앞에 열릴 것이다.”(이명현)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