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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고의 성능저하 ‘꼼수’에 美서 줄소송… 한국도 뿔났다

입력 | 2017-12-25 03:00:00

“애플, 소비자 속여” 비판 확산




‘이건 정말 쉴드(옹호를 뜻하는 온라인 용어·실드) 못 치겠다.’ ‘사기 친 거나 마찬가진데….’

애플 아이폰의 ‘고의 성능 저하’ 소식이 확산된 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용자들의 글이다. 유독 충성 고객들이 많아 ‘앱등이’(골수 애플 마니아를 지칭하는 은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지만 이번에는 과거 품질 논란 때와 다른 분위기다. 미국에서는 애플을 상대로 집단소송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애플은 20일(현지 시간) “배터리 잔량이 적거나 추운 곳에 있을 때 예기치 않게 폰이 꺼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속도 지연 업데이트를 했다”는 공식 성명을 냈다. 특히 애플의 이런 조치는 아이폰6 시리즈의 경우 지난해 12월, 아이폰7은 이달 2일부터 취해진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그동안 해외 유명 커뮤니티 ‘레딧’ 등을 통해 의도적 성능 제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애플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18일 정보기술(IT) 전문매체 ‘기크벤치’가 실제 테스트를 통해 의혹을 입증하자 애플은 뒤늦게 인정했다. 해외 소비자들은 애플의 ‘일방통행 식’ 소통에 실망감을 나타내는 한편 대응책을 찾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아이폰6S+(플러스) 사용자인 박민지 씨(30)는 지난주 iOS(아이폰 운영체제)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했다. 그러자 기기 속도가 매우 느려졌다.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실행할 때 오류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기기가 오래돼서 그런 줄 알았다. 며칠 뒤 애플이 “일부러 성능을 제한했다”고 발표한 사실을 알고는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박 씨는 “이번 업데이트는 애플 계정이 해킹당했는지, 해외에서 결제하려는 시도가 계속돼 보안 때문에 한 거다. 그것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다니 황당하다”고 했다.

올해 출시된 아이폰8을 쓰는 한민지 씨(32)도 고민이다. 아이폰8은 아직 애플이 성능을 떨어뜨리지 않았지만 내년쯤 대상이 되는 게 아닌지 불안하기만 하다. 한 씨는 “아이폰3 때부터 쭉 아이폰만 써왔고 아이패드도 쓰고 있다. 이제는 다른 스마트폰으로 바꿀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고 했다.

애플은 “최상의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며 추후 나오는 제품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최신 제품을 사도록 유도하려는 속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내 한 아이폰 사용자는 “디자인과 케이스 재질도 중요하지만 추울 때 전원이 꺼지는 문제 등 기본 성능부터 충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소송이 시작됐다. 미국 CNBC 등에 따르면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아이폰 이용자 2명이 현지 법원에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같은 날 일리노이주에서도 5명이 소송을 냈다. 이들은 “성능을 낮추는 데 동의한 적 없다”며 “애플의 조치는 최신 모델 구매를 강제해 미국 소비자보호법을 어긴 데다 소비자를 기만한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와 인디애나 등에서도 비슷한 소송이 이어지고 이들의 법률 대리인은 추가 피해 사례를 모으고 있다. 조만간 집단소송으로 번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는 애플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소비자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점은 논란거리지만 애플이 이번 조치를 ‘기기 작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백히 소비자 권익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애플 이용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모델이 성능제한 대상인가요?’나 ‘최신 iOS 업데이트 안 하면 상관없는 건가요?’ 같은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아직 소비자 불만이 접수된 것은 없다”며 “단말기 제조사의 자체적 조치여서 통신사와는 관계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주말이 낀 상황이어서 규제 당국의 움직임도 포착된 것은 없다.

그러나 전자 업계에서는 해외 소비자와 당국의 움직임에 따라 국내에서도 집단소송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현재 온라인상에서는 성능 제한을 피하기 위해 예전 운영체제로 다운그레이드 하는 방법 등이 올라오고 있다. 기존 iOS와 데이터를 백업해둔 경우라면 비교적 손쉽게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예전 iOS 파일을 따로 내려받아 아이튠스(애플의 미디어 플레이어 및 동기화 프로그램)를 통해 설치해야 한다. 다만 애플이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데이터가 모두 삭제될 위험성도 있어 따로 백업해두는 게 필수다. 당연히 보안 등 최신 iOS에만 있는 기능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