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11월에 공개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크리스마스 카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주로 사용해온 ‘해피 홀리데이스’ 대신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폭스뉴스 트위터 캡처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집트에서도 크리스마스는 법정 공휴일이다. 전체 인구의 90%가 무슬림이지만 이집트는 크리스마스를 ‘이드 알 밀라드(콥트교의 성탄절)’로 부르며 기념한다. 이집트 인구의 10%는 기독교인 콥트교도이기 때문이다. 콥트교도는 성탄절에 양초와 전등을 가족과 이웃, 가난한 이들에게 선물한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 요셉이 성모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켰던 불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과 개신교와 달리 콥트교의 성탄절은 1월 7일이다. 16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제정해 현재 널리 통용되는 그레고리력을 따르지 않고 고대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을 따른 것이다. 율리우스력 12월 25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3일 뒤인 1월 7일이다. 러시아와 세르비아 등 일부 정교회 국가도 율리우스력으로 성탄절을 기념한다.
당시 예수가 한겨울에 태어났을 리가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었다. 성경에는 아기 예수가 탄생할 당시 목자들이 양을 치고 있었다고 묘사돼 있다. 보름 전 취재를 위해 찾아간 베들레헴에서는 추운 날씨에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양떼가 뜯어먹을 만한 푸른 목초지는 찾을 수 없었다. 요셉과 성모 마리아가 인구 조사를 위해 베들레헴으로 떠나는 성경 내용을 토대로 예수가 가을에 태어났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유대인들의 추수감사절이 낀 9월이 인구 조사에 적합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집트에 아직 오지 않은 성탄절을 기다리면서 낯설게 느껴진 게 한 가지 더 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으레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건네곤 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인정하지 않는 무슬림에게 이런 인사는 실례다. 대부분의 이집트 친구들은 즐거운 연말연시를 보내라는 뜻으로 ‘시즌스 그리팅스(Season‘s Greetings)’나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라고 말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서는 이런 모습은 이미 일상적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운동이 1980년대 이후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종교와 인종, 성 등에 대한 차별적 언어를 금지하고 가치중립적 표현을 쓰는 것이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8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시민들에게 보낸 카드에 단 한 번도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연말연시에는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축제인 콴자 등 다른 종교와 문화를 대표하는 기념일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