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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최영해]애플의 배신

입력 | 2017-12-25 03:00:00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Reddit)에 한 아이폰6S 사용자가 9일 올린 글이 아이폰 고객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아이폰이 느려졌다고? 배터리를 바꿔봐’라는 제목의 이 글은 성능이 떨어진 아이폰의 배터리를 새것으로 교체하자 다시 제 속도로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누리꾼들은 진위를 놓고 왁자지껄했다. 급기야 정보기술(IT) 기기 성능측정 전문 사이트인 ‘긱벤치’의 창업자 존 폴이 레딧에 아이폰6와 아이폰7 모델에서 인위적인 성능 저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데이터로 입증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미 언론들은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라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논란이 가열되자 애플은 20일 “오래된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면 추운 곳이나 배터리 충전량이 낮을 때, 수명이 다 됐을 땐 전자부품을 보호하기 위해 갑자기 기기가 꺼지게 된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작년 아이폰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통해 전력 수요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이유야 어떻든 아이폰 성능을 인위적으로 낮췄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애플의 뒤늦은 해명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됐다. 고객들이 이런 점을 알았다면 굳이 1000달러(약 108만 원)가 넘는 아이폰을 새로 사려고 했을까.

▷“우리의 목표는 고객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주는 것으로 여기엔 전반적인 성능 관리와 기기 수명이 포함된다”는 애플의 변명은 군색해 보인다. 고객의 충성심을 담보로 한 기망(欺罔) 행위라는 배신감에 미국에서 집단소송이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2년 정도 쓰면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 불거진 이번 사건에서 애플의 얄팍한 상술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단순함과 아름다움, 혁신이라는 럭셔리 브랜드로 고객들을 매혹시킨 애플이 신뢰를 저버린 대가가 만만찮을 것이다. 내년에 선보이는 아이폰X 두 번째 버전은 배터리 용량을 10% 늘린다지만 고객의 분노를 잠재우기엔 미흡해 보인다. 집단소송으로 인한 금전적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애플의 비윤리적인 행태는 실망스럽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다면 애플이 달랐을지 궁금하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