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업체 부실점검 천태만상
1년 뒤 건물주는 이모 씨(53)로 바뀌었다. 이어 지난달 소방점검이 실시됐다. 무려 67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화재 감지기와 경보기, 스프링클러 등 방화시설 대부분이 불량이거나 관리 부실이었다. 1년 4개월 전 완벽에 가깝게 안전했던 건물이 갑자기 위험천만한 건물로 바뀐 것이다. 두 차례 점검 결과를 살펴본 한 소방 전문가는 “소방설비 수십 개가 1년 사이 동시에 망가지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지난해 점검이) 부실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건물주 심기 건드리지 않는 게 중요”
A 씨(55)는 서울에서 10년 넘게 소방점검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그는 서울 도심의 한 건물을 점검했다.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만난 건물주는 다짜고짜 “내용을 확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말이 부탁이지 ‘갑(甲)’의 요구였다. A 씨는 점검 결과를 손에 쥐고 고민에 빠졌다. A4 용지 5쪽 분량의 결과서에는 어림잡아 100건 가까운 지적사항이 담겨 있었다. 결국 그는 ‘소화기 안내 표시 미부착’ 등 대부분의 항목을 빼고 20건 안팎의 지적만 남은 결과서를 건넸다.
또 다른 점검업체 관계자 B 씨는 건물주의 요청을 받기 전에 알아서 조치한다. 그가 직접 점검했던 한 건물의 경우 소화기가 턱없이 부족했다. 소화기 비치 불량은 중요한 지적사항이다. 하지만 B 씨는 직접 모자란 소화기를 구입해 갖다 놓았다. 그러고는 ‘이상 없음’으로 처리했다. 방화문은 항상 닫아놓아야 한다. 만약 ‘말발굽(문 고정 장치)’을 달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하지만 B 씨는 늘 “꼭 제거하시라”는 구두경고로 마무리한다. B 씨는 “건물주의 심기를 거스르면 다음 검사 때 업체를 바꾸려고 할 것이 뻔하다.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점검 중 “좋은 게 좋은 거지” “오래오래 함께 갑시다”라는 건물주의 말은 압력이나 다름없다.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관리인은 “어차피 계약하고 가장 편한 일정에 맞춰 점검한다. 평상시에 관리할 필요가 전혀 없다. 비상시에 대비한 소방점검을 서로 의논해서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당구장 주인은 “건물주가 불러서 점검을 하긴 하는데 소속이 어딘지도 모르고 누군지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이곳에 있는 소화기 최종 점검 일자는 7년 전으로 표기돼 있었다.
○ 점검은 보조가, 관리사는 해외로
비용을 아끼려고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하는 업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현행법상 관리사 1명에 보조인력 2명이 투입되면 하루 최대 1만2000m²까지 점검할 수 있다. 여기에 보조인력을 1명씩 추가할수록 3000∼3500m²씩 대상 면적이 늘어난다. 업체들은 물량을 늘리기 위해 자격 미달 인력을 고용한다.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에는 ‘소방점검 알바 구한다. 학력 자격 따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자주 올라온다. 업체 관계자는 “보조인력을 정규직으로 쓰면 2000만∼3000만 원은 줘야 하지만 알바는 일당 5만 원에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점검업체가 난립하면서 ‘저가 경쟁’이 부실 검사를 부추기고 있다. 한 점검업체 대표는 “과거 인맥으로 알음알음 검사했는데 요즘은 공개입찰로 업체를 고르다 보니 덤핑이 심하다. 3, 4년 전보다 점검 비용이 30∼40% 낮아졌다”고 말했다. 이번에 불이 난 스포츠센터의 소방점검 비용은 80만 원이었다. 전문가들은 “해당 건물 규모를 고려할 때 최소 150만 원 이상이어야 정상 검사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권기범 kaki@donga.com·신규진 / 제천=김자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