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후]포항 지진 41일 넘긴 주민들
‘지진이 우리 가족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못해요.’ 크리스마스인 25일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장태암(오른쪽), 임선자 씨(여·왼쪽) 부부가 아들 기준 군과 얼싸안으며 미소 짓고 있다. 포항=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지진 발생 41일째인 이날 크리스마스에 만난 아내 임선자 씨(47)는 “처음엔 잠을 설칠 정도로 고달팠지만 이제 적응돼 지낼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즉석밥과 커피, 초콜릿, 샴푸, 칫솔 같은 필요한 것만 모아 놓은 보따리를 받았다. 한동안 생필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보내준 사람들에게 고마워했다. 남편 장태암 씨(47)는 아내를 보며 싱글벙글했다.
이 부부는 지체장애 2급이다. 걷기가 수월치 않고 장 씨는 말이 어눌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다. 임 씨는 “지진으로 집을 잃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주위 도움으로 새 집을 찾게 돼 저렇게 웃는다”라고 말했다.
부부는 이사를 마치고 대피소로 돌아왔다. 외아들 기준 군(12·초등학교 5학년)이 29일 방학을 하면 거처를 옮긴다. 통학하기 편한 임대아파트 근처 초등학교로 전학시킬 예정이다. 임 씨는 “얼마 전 수학·과학영재반에 들어가더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 억울한 사람들 누명을 벗겨주는 판사가 꿈이라니 최대한 뒷바라지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부에게 이날은 ‘희망의 크리스마스’인 셈이었다.
임 씨가 감사와 기대의 크리스마스를 얘기할 무렵 규모 3.5의 여진이 닥쳤다. 텐트에 있던 일부 이재민은 체육관 밖으로 뛰어나갔다. 체육관 앞마당에 마련된 천막에서 지진 속보에 귀를 기울이다 여진이 그친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들어갔다.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임 씨는 여진을 잘 느끼지 못한 듯했다.
점심 해결 위해… 길게 늘어선 이재민들 25일 포항 지진으로 흥해실내체육관에서 거주하는 이재민들이 점심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포항=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체육관 밖도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진앙과 가까워 마을 전체 8가구 집이 모두 부서진 용천2리에서는 마을회관에 머물던 주민 12명이 최근 조립식 임시주택으로 이사했다. 넓이 18m²로 크지는 않지만 싱크대가 있는 주방과 세수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 성인 3명 정도가 지낼 만하다. 기름보일러를 때는 온돌 방식 바닥이다. 포항시가 1년 동안 무상으로 제공한다.
물론 미래가 여전히 불안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윤병희 씨(76)는 “지은 지 30년 된 집 기둥이 무너졌는데 시에서 위로금과 보수비로 200만 원 준다고 한다. 집에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고 말했다. 파손된 집이 괜찮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불안해서 체육관이 차라리 편하다는 할머니도 있었다.
포항시는 이주 대상 570가구 가운데 356가구(62.5%)가 새 집으로 이사했다고 이날 밝혔다. 현재 이재민은 흥해체육관 403명, 독도체험수련원 117명 등 520명이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이주 대상 가운데 생계가 어려운 일부 가구가 하루빨리 새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포항=장영훈 jang@donga.com·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