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시즌2]<23> 교통벌금으로 교통사고 줄인다
일본 아키타현 다이센시 이면도로에 초록색이 선명한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다. 차량 속도를 늦추게 하는 특별한 횡단보도로 ‘그린벨트’라고 불린다. 다이센=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지난달 28일 다이센시의 한 주택가 이면도로. 5년 전 한 어린이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곳이다. 이곳의 횡단보도는 다른 곳과 달리 굵은 녹색으로 그려져 있다. 아스팔트와 선명한 대비를 이뤄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띈다. 과속방지턱처럼 솟아 있는 효과를 주는 페인팅도 있다. 시속 60km 정도로 달리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약 10m 앞에 이르자 속도를 20km로 줄였다. 다른 차량도 마찬가지다. 이런 그린벨트 횡단보도가 다이센 전역에 1000여 개나 있다.
○ 생명 구하는 교통 투자
다이센시의 올해 교통안전시설 개선 예산은 4284만4000엔(약 4억809만 원)이다. 정부가 지원한 교통안전 교부금이 1760만1000엔(약 1억6765만 원)이나 포함됐다.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지원받은 덕분에 다이센시는 자체 예산을 다양한 교통안전 프로그램에 투입하고 있다.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한 교통사고 예방교육이 대표적이다. 2주일에 한 번씩 32개 초중등학교에 가상현실 장비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횡단보도 건너는 법’ 등을 마치 실제처럼 체험토록 한다. 자전거를 즐겨 타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도로 주변에서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는 법’ 등의 시뮬레이션 교육을 실시한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다이센시의 교통사고 사상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인구 8만7000명의 중소도시인 다이센시의 2014년 교통사고 사상자는 317명. 지난해 197명으로 37.9%나 줄었다.
다이센시와 인접한 요코테(橫手)시의 한 도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폭이 작다는 이유로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없었다. 하지만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 어린이 통행이 많다. 올 8월 이곳에 신호등이 설치됐다. 지역 경찰과 주민들의 건의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한 건 총무성의 교통안전 교부금 덕분이었다. 사토 요시히토(佐藤良人) 요코테시 재산경리과 직원은 “교통안전 교부금을 가장 시급한 안전 사업에 집중적으로 쓸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 공짜 안전은 없다
교부금의 25%는 경찰청, 나머지는 지자체에 지원한다. 교부금은 횡단보도 신호등, 노면 표시, 가드레일 정비 등 교통안전 관련 설비에만 투자할 수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일본 내 지자체가 지난해 교통안전 사업에 투자한 비용은 약 1500억 엔(약 1조4287억 원). 이 중 특별교부금은 580억 엔(약 5524억 원)이다. 스즈키 겐이치(鈴木健一) 총무성 이사관은 “보통 지자체마다 교통안전 예산의 40% 정도를 교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뿐 아니라 해외 선진국들은 교통 벌금을 교통안전시설에 투자하는 특별회계를 운용하고 있다. 프랑스도 예산법에 따라 교통안전시설 특별회계가 있다. 지난해 특별회계 규모는 9억4000만 유로(약 1조1000억 원)로 무인단속장비나 면허관리 시스템 개선에도 쓰이고 있다. 이탈리아는 도로법에 따라 국가공무원의 교통 단속 벌금은 중앙정부가, 지자체 공무원이 단속한 교통 벌금은 각 지자체가 교통안전시설 투자에 활용하고 있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교통안전 특별회계의 가장 큰 장점은 시설에 투자할 수 있는 예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는 것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교통안전 정책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이센·요코테=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