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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잡史]허균의 ‘황모필’ 써본 명나라 사신 “천하제일의 붓이로다”

입력 | 2017-12-26 03:00:00

붓 만드는 ‘필공’




필공이 붓을 만드는 모습을 담은 풍속화.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이 소장한 기산 김준근의 그림을 모사해 복원한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경상도에 붓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다. 몇 해 전 두세 자루를 얻어 썼는데, 국내에서 으뜸일 뿐만 아니라 천하제일이라 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 최고의 서예가 김정희는 경상도의 이름 없는 필공(筆工)이 만든 붓을 천하제일로 꼽았다. 필공은 붓 만드는 사람으로 필장(筆匠)이라고도 한다. 경상도 필장이 모처럼 서울에 올라오자 추사는 명필로 이름난 친구 심희순에게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며 서둘러 편지를 보냈다.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허균(1569∼1618)에게 중국제 붓 다섯 자루를 주었다. 허균이 써 보니 전부 엉망이었다. 토끼털 붓은 너무 뻣뻣하고 염소털 붓은 너무 물렀다. 허균이 자기가 쓰던 붓을 주자 주지번은 깜짝 놀랐다. “이것이 천하제일의 붓이다(是天下第一品也).” 주지번은 조선 붓 수천 자루를 사서 돌아갔다.

경상도 필장이 만든 붓도, 허균이 준 붓도 모두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황모필(黃毛筆)이다. 붓은 재료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청서필(靑鼠筆·다람쥐털 붓), 양호필(羊毫筆·염소털 붓), 토모필(토毛筆·토끼털 붓), 장액필(獐腋筆·노루 겨드랑이털 붓), 구모필(狗毛筆·개털 붓), 서수필(鼠鬚筆·쥐 수염 붓), 초미필(貂尾筆·담비 꼬리털 붓) 등이다. 하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황모필을 따라오지 못했다.

황모필은 명나라 조정의 백서 ‘명회전(明會典)’에 조선의 조공품으로 기록된 명품이다. 조선 특산품이지만 원재료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했다. 일종의 가공무역이다. 조선에서도 족제비가 잡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실록에 따르면 1622년 조정에서 한 달에 필요한 황모필이 무려 3000자루였다. 조공품과 하사품을 모두 합친 수량일 것이다.

붓 제작은 공조(工曹)의 필공이 맡았다. ‘성호사설’에는 억센 털로 심지를 만들고 부드러운 털로 감싼 다음, 다시 조금 억센 털로 겉을 둘러싸야 좋은 붓이 된다고 나온다. 이러한 ‘털 블렌딩’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필공의 일은 고됐다. 할당량을 채우기도 만만치 않은데 아전들은 붓을 뇌물로 요구했고, 양반들은 필공을 제 종 부리듯 했다. 삯도 주지 않으면서 붓을 만들게 했다. 무리한 요구를 견디지 못한 필공이 목을 매거나 손가락을 잘랐을 뿐 아니라 대궐 안에서 제 목을 찌르는 사건도 일어났다. 기술이 있다고 대접받기는커녕 갈취의 표적이 됐던 것이다.

황모필은 개당 4, 5전(錢)이었는데, 납품가는 2, 3전에 불과했다. 필공은 살기 위해 속임수를 썼다. 개털을 속에 넣고 겉만 족제비털로 살짝 덮은 가짜 황모필이 판을 쳤다. 선조가 진상된 황모필을 해체했더니 속에 싸구려 털을 넣은 가짜였다. 노발대발한 선조는 필공을 처벌했다.

부역을 견디지 못한 필공은 민간으로 흩어져 조선 후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활동했다. 사람들은 붓 만들 재료를 준비해 놓고 필공을 집으로 데려와 붓을 만들게 했다. 필공은 떠돌이 신세였지만 비로소 기술자 대접을 받았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