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일본 교토로 연말 휴가를 오면서 캔버스와 사인펜을 들고 왔다. 아내와 카페에 앉아 차와 케이크를 시켜 놓고 우리에게 올해 있었던 좋은 일들이 무엇인지 10개를 골라내고 어설프지만 하나씩 그려 나가는 과정은 연말이면 가장 뜻깊은 의식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그려 놓은 캔버스를 바라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첫째, 직장인의 삶은 매일 리액션(reaction)의 연속이다. 상사와 고객의 요청에 대응하다보면 어느새 날은 어둑해지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잠을 자기도 짧은 나날의 연속이다. 이런 ‘리액션’의 삶을 살수록 ‘리플렉션(reflection)’, 즉 성찰하는 시간은 더 중요해진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매일 6시간씩 독서를 하면서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모임들도 좋지만 한 해를 돌아보는 나만의 시간을 6시간만이라도 만들어보면 어떨까.
셋째, 한 해를 보내며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만은 없다. 인사평가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연말을 슬프거나 외롭게 보내는 경우도 많다. 임상심리학자 가이 윈치는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이란 저서를 통해 ‘소셜 스낵(social snack)’이란 개념을 소개한다. 무언가 성취했을 때 사람들이 내게 해 주었던 기분 좋은 말, 좋아하는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 등은 마음이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소셜 스낵이 된다. 올 한 해 내게 소셜 스낵이 될 만한 기억이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넷째, 연말에 성찰의 시간을 갖다 보면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올해 12월 초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생명표’는 내게 평균적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보다 명확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기대수명’을 보며 나에게 얼마나 시간이 남아있는지를 생각한다. 이 표에 따르면 여성이 85세, 남성이 79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이다. 남녀 모두 올해 50세라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은 평균 19년 정도 남았다. 40세는 28년, 30세는 37년 남았다고 보아야 한다. 기대수명에서 건강 기간을 빼고 남은 기간은 병원을 오가며 보내는 유병 기간이다. 전반적으로 기대수명이 늘어난 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은 줄어들고 있다.
몇 년에 걸쳐 리스트를 만들다 보니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다. 매년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항목은 아내와의 여행이다. 올해는 전주와 군산, 일본을 여행했다. 집에서 함께 요리를 하고 밥을 해먹는 것도, 출퇴근을 함께하는 일상도 늘 추억의 항목에 올라간다. 리스트를 만들다 보면 직장에서의 성취 말고도 삶에서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올 한 해도 격주로 이 칼럼을 통해 독자분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내게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며칠 안 남은 올 한 해 잘 보내시고 새해에는 우리 모두에게 올해보다 더 신나는 순간이 많기를, 더 좋은 운이 함께하기를.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