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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최영해]‘예비 淑大生’ 다애가 남긴 것

입력 | 2017-12-28 03:00:00


최영해 논설위원

크리스마스이브 날 오전 6시 25분 충북 제천의 보궁장례식장 내 다애 빈소 앞에 동생 다영이(17)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뒤에 제천여고 학생 35명이 교복 차림으로 앉았다. 한 친구가 다애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대통령조화 자리에 대학조화

“사랑하는 다애에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너무 보고 싶다. 노래방에서 부끄러워하며 노래 부르던 모습, 수학여행 가서 숨어서 컵라면 먹던 거, 하나하나 너무 소중한 기억이야. 넌 어디서나 밝게 빛났어. 여리고 투정 많은 네가 우리 투정까지 받아주느라 고생했어. 우리를 이끌고 채워줘서 고마워. 너 이름처럼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을 줬어. 기억할게. 사랑해 김다애.”

빈소에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은 서로 끌어안고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숨죽여 흐느꼈다. 장례지도사도 눈물을 훔치며 술잔을 올렸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 그날 가족과 친구들의 오열 속에 다애는 화장됐다.


발인 전날 오후 이형진 숙명여대 대외협력처장이 ‘숙명여자대학교’라고 적힌 조화를 들고 왔다. 숙대 예비입학생, 제천여고 3학년 다애 양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강정애 숙대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이 다애 가족의 슬픔을 함께 나누자고 의견을 모았다. 다애 아버지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보낸 조화를 밖으로 치우고 그 자리에 숙대 조화를 들여놓았다. 이 처장은 “숙대에서도 좋은 인재를 잃어 비통해하고 있다”며 위로했다. 제천여고 3학년 1∼10반 담임 선생님들과 이철수 교장은 다애의 빈소를 떠나지 않았다.

21일은 다애가 화재가 난 제천 스포츠센터 안에 있는 매점에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제천 바이오밸리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고 봉양읍내에 치킨집을 연 지 한 달 반. 다애는 충북도청 등 관공서에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던 터였다. 대학생이 되는 내년 2월까지 두 달 바짝 일하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수시전형에서 숙대 화공생명공학과 프라임공학 우수장학생으로 합격한 다애에게 기쁨도 잠시, 당장 낯선 서울 생활에 돈 걱정이 만만찮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게 다애의 마지막이었다.

다애는 지난달 13일 숙대에서 합격증을 받았다. 지난해 공대를 설립한 숙대 입학전형팀은 여성 인재를 찾아 전국의 고교를 다니다 1월 제천여고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던 다애를 모의 면접장에서 만났다.

계층사다리 무너지나

다애가 그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다니지 않았다면 화를 면했을 것이다. 따뜻한 봄날 부푼 가슴을 안고 서울에 올라와 캠퍼스를 거닐었을 아이다. 장학생으로 뽑았던 숙대도 지금은 다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이 처장은 “내년 2월 입학식 즈음 다애 부모님을 다시 찾아뵙고 다애가 받았어야 할 학교 배지와 숙대 마스코트인 눈송이 인형을 전할까 한다”고 했다. 부모는 다애에게 미안하고 아무 할 말이 없다.

다애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려던 여학생이었다. 어려운 집안에서 공부 하나로 숙대 장학생이 됐다. 부모는 치킨집을 하면서도 고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자식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것이 우리들의 부모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이고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 밑거름이기도 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부터 알아봐야 했던 18세 다애의 마지막 길이 너무 원통하고 애처롭다. 죽지 않아도 될 아이를 우리는 이렇게 보내야 했다. 2017년을 보내는 이 겨울이 시리도록 잔인하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