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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전성철]‘입 없는’ 교정행정의 그늘

입력 | 2017-12-28 03:00:00


전성철 사회부 차장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던 MH그룹의 미샤나 호세이니운 대표가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한국을 다녀갔다. 19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본보 기자와 만난 호세이니운 대표는 10월 미국 CNN에 보낸 ‘인권 상황에 대한 보고서’에서 했던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박 전 대통령을 구치소의 비인권적 환경에 노출시키는 것은 정치 재판의 결과다”, “법무부가 박 전 대통령의 인권 침해를 부인하는 것은 정부를 감싸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MH그룹의 주장은 사실관계가 잘못된 부분이 많다. 박 전 대통령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10.08m² 크기의 독방을 혼자 쓰고 있다. 일반 수감자 1인당 기준 면적 2.58m²의 4배 가까이 되는 공간이다. 감방엔 전기 열선이 깔려 있어서 난방을 가동하면 실내온도가 20도 정도 된다고 한다. ‘만성 질환과 영양 부족에 대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구치소 내부 의료진에게 수시로 진료를 받고 있고 외부 병원에서 디스크 증세 등에 대한 진찰과 치료도 받았다. 이런 상황을 인권 침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구치소와 교도소 등 우리나라 교정시설의 수준은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 최근 한 케이블방송사는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큰돈을 들여 세트장을 지었다. 드라마 제작진은 당초 법무부에 촬영 장소 제공을 요청했다. 법무부는 개소를 앞둔 서울동부구치소를 빌려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진은 구치소를 둘러본 뒤 “시설이 너무 좋아서 감방 느낌이 안 난다”며 포기했다고 한다. 진짜 감방이 너무 훌륭해서 감방처럼 보이는 세트장을 지은 거다.

사정이 이런데도 MH그룹 같은 단체가 설칠 수 있었던 것은 법무부의 교정행정 홍보가 부족해서다. 국정농단 사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등 거물급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 수감됐다. 그러나 법무부는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는지 알리는 데 늘 소극적이었다. 만일 법무부가 단 한 번이라도 서울구치소의 구석구석을 외부에 제대로 공개했다면 MH그룹이 끼어들 틈은 없었을 거다.

이는 법무부가 ‘검찰 식민지’로 운영되는 구조와 관련이 있다. 검찰은 법무부의 지휘, 감독을 받는 기관이지만 실제로는 법무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박상기 장관 취임 직전까지 검찰 고위직 출신이 장관 자리를 독식해온 데다 차관 자리도 늘 고검장급 검찰 간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교정행정을 홍보하는 일도 현직 검사인 대변인이 담당하고 있다. 1만6000명 가까이 되는 교정공무원들은 직접 목소리를 낼 ‘입’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교정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부족한 검사 대변인이 주도하는 홍보가 한계를 드러내는 것은 당연하다.

법무부 ‘탈(脫)검찰화’는 주요 보직을 변호사 등 외부 인사에 나눠주는 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교정이나 출입국·외국인정책, 범죄예방정책처럼 검찰과는 다른 종류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 힘을 실어주고 목소리를 찾아줘야 한다. 검찰국이나 법무실 등 법조인이 맡아야 할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부문을 총괄할 차관급 보직 신설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