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결심공판서 1500자 분량 글 읽으며 최후진술
27일 오후 6시 45분 서울법원종합청사 312호 중법정.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이 피고인석에서 울먹이며 항소심 최후 진술을 마무리했다. A4용지보다 조금 작은 종이 2장에 직접 쓴 1500자 분량의 글을 9분 동안 읽었다. 종이를 든 손은 떨렸다.
○ “실력으로 초일류 기업인 인정받고 싶었는데…”
앞서 이 부회장은 최후 진술을 시작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한민국에서 저 이재용은 우리 사회에 제일 빚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부모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받았다. 삼성이라는 글로벌 일류 기업에서 능력 있고 헌신적인 선후배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행운까지 누렸다”고 말했다. 또 “10개월간 구치소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겪으며 사회에서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 인생 얘기를 들으며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혜택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 부회장은 “제 인생의 꿈을 말씀드리고 싶다. 오로지 제 실력과 제 노력으로 세계 초일류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었다”며 “이것은 전적으로 저한테 달린 일이고 제가 못하면 대통령 할아버지가 도와줘도 할 수 없다. 근데 제가 왜 대통령에게 청탁하겠나. 재판장님 이것만은 꼭 살펴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기 위한 청탁을 했다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공소 사실을 강하게 부인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 회장 타이틀이나 지분 같은 건 의미 없었고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아버지 같이 셋째 아들도 아니고 외아들이다. 다른 기업과 같이 후계자 다툼 할 일도 없었다”며 “이런 제가 왜 승계를 위해 청탁을 하겠나. 이건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순간 이 부회장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이 부회장은 피고인 신문 도중 “앞으로 삼성그룹 회장이라는 타이틀은 없을 것이다”라며 출소하더라도 그룹 회장 직을 맡지 않을 뜻을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시작된 이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은 오후 6시 55분까지 8시간 55분 동안 이어졌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 1심 재판과 마찬가지로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특검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된 최 전 실장과 장 전 사장에게는 각각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또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모녀의 승마 지원에 관여한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64)에게는 징역 10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55)에게는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박영수 특검은 2500자 분량의 논고문을 8분 동안 읽으며 “이 사건은 삼성이 경영권 승계 대가로 대통령과 측근에게 뇌물을 준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25분 동안 1만 자 분량의 최종 변론으로 맞섰다. 이인재 변호사(64)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문화, 스포츠 융성 등 공익적 목적을 내세우며 지원을 요청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또 “대통령으로부터 후원 요구를 받고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른 게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라고 강조했다.
○ 독대 횟수 놓고 공방
앞서 특검과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몇 차례 독대했는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특검이 안봉근 전 대통령국정홍보비서관(51·구속 기소)의 증언을 제시하며 “2014년 9월에도 독대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 부회장은 “안가에서 안 전 비서관을 만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제가 이걸로 거짓말할 필요도 없다. 그걸 기억 못 하면 적절한 표현 같진 않지만 제가 치매”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청와대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만난 건 2015년 7월과 지난해 2월 두 차례뿐”이라고 말했다. 2014년 9월 15일 대구·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의 만남을 포함해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횟수는 모두 3번이라는 것이다.
이호재 hoho@donga.com·권오혁·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