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기자
지난해 2월 경북 경주시 황남동 황남탕 앞 좁은 골목길. 칠순을 넘긴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1970년대 황남대총 발굴을 회고하며 살짝 눈물을 보였다. 변변한 장비도 없이 땅을 파던 고생 때문이 아니라, 이젠 떠나간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추억 때문이리라.
27일자를 끝으로 1년 10개월에 걸쳐 연재한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시리즈에서 최 교수는 1회 황남대총 발굴 이야기에 등장했다. 그는 고고학계에서 거침없이 소신을 밝히는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73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 임시고용직으로 시작해 한국 고고학계 석학으로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에 올랐다.
시리즈 취재를 위해 39개 유적에서 48명의 고고학자를 인터뷰하며 ‘발굴이란 무엇인가’를 자주 고민했다. 작고한 김정기 국립문화재연구소 초대 소장은 광복 이후 최대 국책사업이던 황남대총 발굴에 대해 사석에서 “겁 없는 짓”이라며 주저했다고 한다. 당시 열악한 발굴기술로 유적이 파괴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최 교수 역시 “황남대총 발굴은 신라 역사 해석에 지대한 역할을 했지만 유물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다”며 “내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파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마지막 회 인터뷰에 응한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도 무령왕릉 졸속 발굴에 대한 회한을 토로했다.
4대강 사업에 따른 유적 파괴와 경주 월성 발굴 속도전 논란에서 보듯 21세기에도 문화재 훼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발굴마저 파괴일 수 있기에 서두르지 말고 원칙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는 원로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