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최전선/나노바이오]<2> 초미세 침투수술의 첨병 ‘나노로봇’
김민준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 기계공학과 석좌교수는 미생물 살모넬라의 ‘꼬리’인 편모를 재가공해 나선 모양의 나노로봇을 개발했다. 이 나노로봇은 체액의 상태에 따라 세 가지로 길이와 모양을 바꾼다. 왼쪽은 보통의 느슨하게 꼬인 모양이고, 가운데가 가장 심하게 꼬인 모양이다. 오른쪽은 중간 상태다. 모양에 따라 속도와 회전수 등이 모두 달라 몸속 환경에 맞춰 조종이 가능하다. 김민준 제공
나노로봇은 주변 환경을 인지해 스스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수십∼수백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크기의 인공 로봇이다. 미생물인 세균(박테리아)의 수십분의 1 크기로, 혈액 등 체액 안에서 자체 추진력으로 헤엄쳐 움직인다. 이때 외부에서 자기장을 이용해 방향과 속도를 지정해 주면 암세포 등 목적지를 정확히 찾아가거나 공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현재 의학 영상에 활용하고 있는 MRI 장비를 그대로 써서 로봇을 조종할 수 있도록 자기장 제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곧 동물실험을 통해 검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기장의 도움으로 목적지에 도착한 나노로봇은 세포를 뚫고 들어가거나, 운반해 온 약물을 표적 세포 안에 쏟아붓는 약물전달 치료를 할 수 있다.
로봇이라고 불리지만,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로봇과는 제조 방법이 다르다. 크기가 너무 작아 전통적인 반도체 제조 공정으로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팀은 미생물인 박테리아의 꼬리(편모)를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편모는 대장균이나, 식중독 균의 일종인 살모넬라 등 박테리아의 끝에 달린 추진 기관으로 채찍같이 긴 모습이 특징이다. 편모는 모터와 비슷하게 생긴 기관을 통해 박테리아의 몸통과 연결돼 있으며, 마치 프로펠러처럼 회전하며 추진력을 낸다. 주변 환경에 따라 모양과 길이를 바꿔 회전력을 조절해 추진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박테리아는 인간으로 치면 100m를 2초에 주파하는 놀라운 속도로 헤엄을 친다”며 “편모는 유체 환경에 따라 길이와 형태가 변하는 생물학적 센서이자 액추에이터(구동기)”라고 말했다.
한 달 뒤인 11월 28일에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나노로봇을 ‘응용물리레터스재료’에 발표했다. 마치 길고 가는 소시지 위에 두꺼운 빵가루를 입혀 핫도그를 만들 듯, 편모 나노로봇의 표면에 딱딱한 물질인 실리카를 편모의 10배 두께(200nm)로 입혔다. 여기에 미세한 니켈 금속을 코팅해 몸체 전체를 자기장으로 조종하게 바꿨다. 속도가 한층 빨라져서 박테리아의 거의 88% 수준의 속도로 헤엄칠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100m를 2.3초에 달리는 속도다. 적(암세포)을 만나면 이 속도로 돌진해 뚫어버린다. 김 교수는 “10월 개발한 나노로봇은 유연해 장애물을 피해 헤엄치기에 유리하고, 11월 개발한 나노로봇은 단단해 속도와 관통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나노로봇은 다양한 형태로 연구되고 있다. 구슬 형태의 나노로봇 여러 개를 마치 열차처럼 연결해 목적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모듈화 나노로봇’, 헤엄치지 않고 조직 위를 ‘걷는’ 나노로봇 등이 있다. 올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연구팀은 DNA 분자가 서로 결합하는 성질을 이용해, 인체 안 조직에 부착한 채 6nm씩 위치를 옮기며 주변을 탐사하는 나노로봇을 만들어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크기가 수십∼수백 배 더 큰 ‘마이크로로봇’은 나노로봇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한 곳에서 쓰인다. 합성 물질로 나선이나 고깔 모양을 만든 뒤 정자 등 세포를 포획해 원하는 곳으로 인도하는 로봇이 대표적이다. 활동성이 약한 정자를 도와 불임을 치료할 수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지능시스템연구소는 올해 3월 아예 정자 모양을 한 마이크로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미세한 칼이나 집게를 부착해 눈 수술이나 뇌 수술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