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올해 우리가족 안전 위협한 사건-사고들
○ 살충제 계란, 생리대 사태가 낳은 ‘케미포비아’
서울 강북구에 사는 주부 소모 씨(59)는 올여름 아찔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저녁 밥상을 차릴 때면 틀어놓은 라디오 뉴스에서 왠지 낯익은 단어가 들렸다. 국내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왔는데 그 계란 껍데기에 ‘08마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설마…’ 했지만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08마리’라고 새겨진 계란이 눈앞에 있었다. 곧바로 계란을 버렸지만 ‘내 가족에게 살충제를 먹였다’는 자책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살충제 계란을 평생 먹어도 문제없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뒤에도 소 씨는 한 달가량 아예 계란을 사지 않았다. 지금은 포장지를 벗겨서라도 계란 껍데기에 새겨진 난각코드를 일일이 확인한 뒤 계란을 구입한다.
“20년 넘게 생리대를 쓰면서 한 번도 생리대가 몸에 안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충격 그 자체였다.” 차은정 씨(44)는 그동안 생리주기가 불규칙하거나 이상 징후가 보이면 피곤해서일거라고 여겼다. 정부가 안전하다고 발표했지만 차 씨는 지금도 생리대를 쉽게 고르지 못한다.
막 생리를 시작한 딸을 생각하면 더욱 조심스럽다. 한참 생리대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지만 포장지엔 회사와 제품명을 빼면 소비자가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뭘 보고 사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답답해요.” 최근 면 생리대나 생리컵 등 생리대 대용품에 대한 관심이 늘었지만 아직 사용자는 많지 않다. 대다수 여성은 불안하고 찜찜하지만 일회용 생리대를 쓸 수밖에 없다.
○ 생존자 가족에게도 지옥 같았던 2주
“○○(딸의 아명) 어머님, 병원을 옮기셔야 할 것 같아요.”
태어난 지 2주가 조금 넘은 딸을 병원에 입원시킨 A 씨(35·여)는 16일 밤 의료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딸이 있는 신생아 중환자실은 젊은 부부의 통곡과 경찰의 무전 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신생아 4명이 1시간 21분 만에 잇따라 숨진 그날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의 비극은 그렇게 시작됐다.
‘왜 좀 더 일찍 아이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을까. 애초에 아이가 약하게 태어난 게 내 탓은 아닐까.’ 결혼 3년 만에 얻은 소중한 딸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A 씨는 지금도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은 올해 엄마들이 가장 분노한 사건 중 하나다. 출산을 앞둔 엄마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내년 2월 출산을 앞둔 김모 씨(28)는 “대학병원까지 저렇다면 아이를 집에서 낳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 불안 키운 정부 달라져야
생리대 파문 역시 3월 시민단체가 생리대 안전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부는 무시했다. 불안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 8월에야 조사에 나섰다. 엄마들은 해외 소식과 작은 소문에도 ‘혹시 문제가 없나’라고 생각할 때 정부는 ‘설마 괜찮겠지’라고 여긴 셈이다.
하지만 엄마들은 아직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혹시 난각코드를 거짓으로 표시하진 않을까요?” “전 성분을 표시해도 소비자가 화학물질이 얼마나 유해한지 어떻게 알 수 있죠?” 올 한 해를 버텨낸 엄마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이들의 바람은 단 하나. “정부가 좀 더 깐깐해졌으면 좋겠어요.”
김호경 kimhk@donga.com·조건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