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올해 스러져간 인물
[국내]민족화합 헌신한 서영훈 前적십자총재
동양인 최초 보스턴 마라톤 우승 서윤복
박맹호 민음사 회장-배우 김주혁도 하늘로
각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많은 별들이 2017년 세상을 떠났다. 위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 박맹호 민음사 회장. 동아일보DB
한국의 대표 경제 관료로 꼽히는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 31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강 전 장관은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김대중(DJ) 정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제정책을 만들고 실행한 정통 관료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맡아 외환위기 돌파의 중책을 수행했다. 경제수석에 이어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그는 2002년 고향인 전북 군산 재·보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후 18대까지 3선 의원을 지냈다.
‘태권도 대부’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10월 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6세. 외교관으로 일하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하며 스포츠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고인은 1986년 IOC 위원에 선출돼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국제대회 유치에 크게 기여했다. 국기(國技)인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을 성사시킨 것도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마라톤 영웅’ 서윤복 전 대한육상연맹 고문이 6월 27일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해 동양인으로서는 최초이자 당시 세계 기록인 2시간25분39초로 우승했다. 그는 훗날 회고의 글에서 “이겨서 한국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큰 내 사명일 것 같았다”고 적었다.
문화계 인사도 여러 명 세상을 떠났다.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1월 22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1966년 민음사를 창립한 뒤 ‘오늘의 시인 총서’를 발간해 김수영 고은 황동규 등 당대 젊은 시인들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또한 1977년 제정한 ‘오늘의 작가상’을 통해 이문열 한수산 최승호 등 현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소설 ‘즐거운 사라’를 쓴 마광수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9월 5일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66세. 윤동주 문학이론 연구의 권위자인 고인은 파격적인 성적 묘사를 담은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장편소설 ‘광마일기’,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등을 잇달아 내놓아 외설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1991년 발표한 소설 ‘즐거운 사라’로 인해 1992년 강의 중 긴급 체포됐으며 대법원에서 ‘음란문서 제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교수직에서 해임됐다. 2003년 복직했으나 2016년 정년퇴임한 뒤 홀로 생활하며 우울증으로 비극적인 말년을 보냈다.
[국제] 노벨상 수상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美中 수교협상 이끌었던 브레진스키
로큰롤 척 베리-007 로저 무어도 별세
‘탈냉전’ ‘민주화’ 등 당대 사람들을 사로잡은 꿈을 좇은 해외 인사들도 세상과 작별했다.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플레이보이’ 창간자 휴 헤프너. 동아일보DB
냉전 종식을 결정지은 독일 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가 6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1982년 총리에 취임해 1998년까지 16년간 재임하면서 독일의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 같은 달 ‘독일 연합 10단계 계획’을 깜짝 발표했고 이듬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등 관계국 정상들과 동독의 지위와 관련한 담판을 벌이며 통일을 이뤄냈다. 그는 유럽 통합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말년에 유로존 위기가 터진 뒤에도 “유럽이 다시 전쟁에 빠져선 절대 안 된다”며 평화를 위한 유럽 통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중국의 인권운동가이자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가 6월 13일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중국의 민주화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싸웠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문학박사로 미국서 강의 중이던 1989년 그는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해 시위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해외 망명을 거부하고 중국에 남아 시민운동을 이어갔고 총 4차례 투옥됐다. 2008년엔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08 헌장’을 발표했다가 ‘국가 전복 선동죄’로 11년형을 선고받았다. 수감 중 간암이 발병해 선양의 병원에서 결국 사망했다. ‘최대의 선의로 정권의 적의를 대하고 사랑으로 원한을 녹인다’는 말을 남겼다.
27세였던 1953년 성인잡지 ‘플레이보이’를 창간해 ‘성(性) 혁명의 기수’라는 평가를 받은 휴 헤프너는 9월 27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보수적인 미국 사회의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터부를 깼다는 평가와 함께 여성에 대한 왜곡된 성적 이미지를 고착화시켰다는 비판도 받았다. 흑인 민권 운동과 여성 낙태권리 운동을 지지하며 미국 진보층에도 어필했다.
이 외에도 예체능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2017년 세상을 떠난 유명 인사로는 ‘로큰롤 음악의 창시자’로 통하는 가수 척 베리(향년 91세), ‘나를 사랑한 스파이’ ‘007 죽느냐 사느냐’ 등 1970년대 007 시리즈에 연이어 출연한 ‘제3대 제임스 본드’로 유명했던 배우 로저 무어(향년 90세), 메이저리그 역대 20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하며 사이영상을 2회 수상한 야구선수 로이 할러데이(향년 40세)가 있다.
‘달 위에 선 마지막 사람’ 유진 서넌도 1월 16일 83세 나이로 별세했다. 1972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마지막 달 탐사선 아폴로 17호에 탑승해 달에 갔다. 그가 달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신이 허락하신다면 인류의 평화와 희망을 안고 돌아올 것”이란 말은 조만간 다시 현실화될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1일 유인(有人) 화성 탐사를 목표로 하는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를 승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승건 why@donga.com·손택균·박성진 기자·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