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척하지만 혼자 물 못마시는 나를 닮은 고양이 자주 그려 붓 떨어뜨리고 먹물 쏟기 예사지만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어 가슴 뭉클 새해 대학원 석사과정 도전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장애인 미술 공모전 ‘JW아트 어워즈’의 수상자 최지현 씨가 수상작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체장애인 최지현 씨(39·여)의 이야기다. 최근 서울 관악구 개인 화실에서 만난 최 씨는 “당황한 친구들이 쓰러진 나를 큰길로 옮기면서 부러진 뼛조각이 튕겨나가 5, 6번 척수 신경을 잘랐다. 그렇게 지체장애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어깨 힘으로 겨우 두 팔을 들 순 있지만 손가락은 쓰지 못한다. 하반신은 아예 움직일 수 없다.
몸을 자유롭게 쓰기 어려운 최 씨는 막대를 붙인 붓을 손목밴드로 고정해 그림을 그린다. 최지현 씨 제공
2010년 잠실 장애인미술 창작 스튜디오를 방문한 게 미술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됐다. 장애인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최 씨는 “그림 실력이 향상돼 전시회까지 하게 되면 가족들이 뿌듯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최 씨 화실에는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 유독 많았다. 그가 키우는 고양이가 모델이다. 고양이 이름은 ‘야동(惹動)’. 이끌 야, 움직일 동 자(字)를 써 ‘움직임을 이끈다’는 뜻이란다.
고양이는 곧 그의 ‘페르소나(Persona·작가의 분신)’다. JW아트 어워즈에 출품한 작품에도 손으로 내민 물 한 모금을 마시는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사람이 물을 주지 않으면 혼자 마시지 못해요. 저도 똑같아요. 또 겁이 날 때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 모습이 꼭 강해 보이고픈 내 모습 같더라고요.”
편치 않은 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쉽지 않았다. 손에 힘이 없어서 붓을 떨어뜨리거나 먹물을 쏟는 일이 다반사였다. 팔을 정면으로 들 수 없어 몸을 틀어 작업해야 했다. 지난여름엔 유방암으로 붓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럼에도 미술은 그를 치유했다. “죽고 싶단 생각은 사실 간절하게 살고 싶단 말과 같아요. ‘또 뭘 그려볼까?’라며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서 삶이 능동적으로 바뀌었어요.”
최 씨는 “편하게 살지 그러냐는 얘기도 듣는다. 하지만 숨만 쉬고 산다면 그게 사는 걸까 생각한다. 죽지 않고 열심히 산다는 걸 주위에 보여주고 싶다”며 웃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