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미술 예술로 끌어올린 ‘연극계 대모’
1927년 경북 영천 만석꾼 집안의 10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고인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재학 중 연극반을 통해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무대미술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1960년대 처음 무대미술·의상 디자이너로 등장한 고인은 1966년 김정옥 연출가와 극단 ‘자유’를 창단했다. 배우 박정자, 김용림, 김혜자, 최불암, 고 윤소정 등이 ‘자유’ 창단 멤버다.
고인은 ‘따라지의 향연’(1966년)을 시작으로 ‘왕자 호동’ ‘노을을 나르는 새들’ ‘햄릿’ ‘어디서 무엇이 돼 다시 만나랴’ 등 40여 년간 200여 개 작품의 무대와 의상을 도맡아 무대미술을 하나의 예술 장르로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이름 앞에 ‘무대미술계의 대모’란 수식어가 따라다닌 이유다.
배우 박정자 씨는 “무대를 빛내는 ‘뒷광대’를 운명으로 여기신 선생은 의상도 영혼을 품은 연기자라 생각하셔서 늘 의상을 미리 제작해 연습할 때부터 배우에게 입히셨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선생이 ‘나는 무대 뒤 먼지를 쓸다가 예술원 회원이 됐어’라고 말씀하셨다”며 “무대 뒤 먼지까지도 사랑하실 정도로 무대에 대한 애정이 컸던 분”이라고 추모했다.
한불문화협회장, 무대미술가협회장 등을 지냈으며 화관문화훈장, 동아연극상, 백상예술상, 동랑연극상 등을 받았다. 유족은 권유진(첼리스트) 이나 씨(재프랑스 화가) 등 1남 1녀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은 1일. 장례는 대한민국연극인장으로 치러진다. 02-927-4404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