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아예 소방서 앞을… 해도 너무한 불법주차

입력 | 2018-01-02 03:00:00

경포대 해맞이 차량, 119센터 막아… 제천 참사 겪고도 달라진게 없다




새해부터… 제발 이러지 맙시다 1일 강원 강릉시 경포해변을 찾은 해맞이 관광객 차량 10여 대가 강릉소방서 경포119안전센터 앞마당에 불법 주차해 있다. 이들 차량 때문에 출동했던 펌프차 1대와 구급차 1대가 센터 차고로 들어가는 데 40분이 넘게 걸렸다. 당시 센터에는 펌프차 1대가 있었는데 화재가 났다면 이 시간 동안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다. 강릉소방서 경포119안전센터 제공

“아찔했습니다.”

강원 강릉소방서 경포119안전센터 소속 이모 소방장(41)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새해 첫날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상황 탓이다. 이날 오전 7시 50분경 이 소방장 등을 태운 펌프차와 구급차가 경포대 입구 안전센터 근처에 다다랐다. 오전 6시 경포해변에서 열린 해돋이 행사에 지원 나갔다가 복귀하는 길이었다. 안전센터에 도착했을 때 소방대원들 눈앞에 믿기 힘든 장면이 펼쳐졌다. 소방차량이 드나드는 안전센터 앞마당에 차량 10여 대가 빼곡히 차 있었다.

해돋이를 보러 온 관광객들이 주차할 곳이 없자 소방서 앞마당을 ‘점령’한 것이다. 이곳에서 경포해변까지 거리는 약 200m다. 소방대원들은 일일이 차량에 남겨진 번호를 확인해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운전자를 불러 차량을 모두 이동시키는 데 40분 넘게 걸렸다.


과거 해맞이 때나 피서철에도 안전센터에 차량을 세우는 운전자가 있었다. 그때마다 남아 있던 소방대원이 다른 곳을 안내했다. 하지만 이날은 아무도 없었다. 해맞이 행사 참석자가 20만 명으로 예상돼 대원 6명이 펌프차 1대와 구급차 1대에 나눠 타고 모두 나간 것이다. 그사이 관광객들은 아무도 없는 경포안전센터 앞마당을 차지했다.

40분 동안 긴급 차량 2대가 오도 가도 못했고 남아 있던 다른 펌프차 1대도 꼼짝할 수 없었다. 만약 비상상황이 발생했더라도 출동이 불가능했다. 이 소방장은 “당시 안전센터 안팎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만약 화재 신고가 들어왔다면 출동이 불가능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라고 말했다.

하루 전 상황도 다를 바 없었다. 지난해 12월 31일 해넘이 행사를 앞두고 경포해변 도로에 러버콘(차량 통제를 위한 원뿔형 차단용품)이 설치됐다. 긴급 소방로 확보를 위해 불법 주차를 막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설치 후 얼마 안돼 러버콘은 도로 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운전자들이 러버콘을 인도 등 다른 곳으로 치워버린 뒤 주차한 탓이다. 처음 한두 명이 시작하자 나중에는 너도나도 따라하면서 기다란 불법 주차 행렬이 만들어졌다.

소방차 등 긴급차량 통행에 지장을 초래하면 도로교통법에 따라 2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이날 경포안전센터를 점령한 차량 운전자에게는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았다. 안전센터 측은 새해 첫날 경포를 찾은 타 지역 관광객이 많고 전화통화 후 차량을 옮긴 점을 감안해 계도 및 주의 조치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다양한 제야행사가 펼쳐진 서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1일 0시를 전후해 서울 송파구를 지나는 올림픽대로는 출퇴근길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정체가 심했다. 이곳을 지나던 차량 운전자들이 근처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새해맞이 불꽃쇼와 레이저 조명쇼를 구경하느라 서행하거나 아예 정차시킨 것이다. 올림픽대로와 연결된 송파구 일대 도로도 주차 차량으로 몸살을 앓았다. 택시를 이용해 올림픽대로를 지나던 강모 씨(30·여)는 “운전자들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거나 휴대전화를 꺼내 촬영하면서 앞으로 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방관들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후에도 안전의식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최진근 경포119안전센터 팀장은 “아무리 관광객이지만 편하다는 이유로 119안전센터에까지 주차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소방차량 출동 과정에서 불법 주정차 차량에 손상을 입혀도 책임을 묻지 않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강릉=이인모 imlee@donga.com·구특교·김자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