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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조동주]안전보다 돈… 탐욕이 불지른 제천참사

입력 | 2018-01-02 03:00:00


조동주·사회부

①돈 아끼려 낡은 열선 방치한 건물주 ②얼어붙은 열선을 손으로 잡아당긴 건물관리인 ③여탕을 확인하지 않은 소방점검업체 ④먹통 무전기 탓에 2층 진입 늦은 소방당국 ⑤소방차 앞길 가로막은 주차 차량.

지난해 12월 21일 발생한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가 참사로 번진 이유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가장 큰 원인을 무엇으로 보십니까?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도 딱 하나를 꼽기 어렵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이 중 하나라도 상식 수준의 역할만 했다면 29명이나 숨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큰 이유를 ‘탐욕’으로 골랐습니다. 제천 화재는 비용을 줄이려 안전을 희생시킨 참극이기 때문입니다.

건물주 이모 씨(53·구속)는 1층 주차장 추가 열선 공사비 221만 원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직접 고치라고 했습니다. 김모 관리과장(51)은 얼어붙어 틀어진 열선을 일일이 손으로 잡아당겼습니다. 누전 때마다 그는 이런 황당한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앞서 11월 30일 소방점검 업체는 2층 사우나 점검을 건너뛰었습니다. 영업 중인 여탕이라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철제 선반에 가리고 잠겨있던 비상구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한 달도 안 돼 화재가 일어났고 2층에 갇힌 20명은 생명로(生命路)를 찾아 헤매다 쓰러졌습니다.

충북소방본부 상황실이 보낸 ‘2층 구조 요청’ 무전은 현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구조대는 애꿎은 지하 1층부터 수색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현장에서 소방관이 사용한 휴대용 무전기가 먹통이었던 걸 보면 신호가 잘 닿지 않는 음영지역일 가능성이 큽니다. 무전기가 원활히 작동하려면 중계기를 빼곡히 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쩌면 낡은 무전기의 자체 결함일 수도 있습니다.

주정차 차량 탓에 소방차 진입도 늦었습니다. 그 도로 옆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습니다. 스포츠센터 앞에 있는 한 대형마트 이용객을 위한 공간입니다. 주차비를 내는 것도 아닙니다. 급히 차량을 세워야 했다면 이 주차장을 이용하면 됩니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이를 번거롭고 귀찮아했습니다. 그냥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세워놓는 것이 편했던 것입니다.

1월 1일 전국의 일출 명소에 관광객이 몰렸습니다. 주요 도로는 순식간에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찼습니다. 급기야 소방서 앞마당까지 점령당한 곳도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제천 합동분향소에서 만났던 한 고교생이 떠올랐습니다. 그 학생은 “슬프기보다 화가 난다. 왜 우리는 늘 무슨 일이 터진 뒤에야 바꾸려고 하느냐”며 분노했습니다. 당시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더 부끄러운 건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겁니다. 새해 첫날 소방서 앞을 점령한 차량들의 모습은 정녕 대한민국의 민낯일까요. 제가 다시 그 고교생을 만났을 때 “더 이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일은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조동주 기자 djc@donga.com